<그래픽=김소은 기자>

누군가의 가난은 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누구나 한 번쯤 텔레비전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 모습을 보고 방송국에 후원 문의를 하고, 어떤 이는 불쾌감을 느껴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불우한 이웃들을 돕기 위해 제작된 모금 방송은 어떤 목적으로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를 사용하며 그들의 삶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

빈곤 포르노, 동정심을 이용하다
빈곤 포르노란 주로 가난, 질병 등의 원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방송이 과장된 모습으로 묘사해 모금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빈곤 포르노는 출연자가 고난을 겪는 모습만을 편집해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자극하거나 단편적인 모습을 전체인 것처럼 과장한다. 비케이 안(Bekay Ahn) 한국기부문화연구소 소장은 모금 방송들이 빈곤 포르노적 요소를 사용하는 이유를 인간의 심리와 연결 지어 설명했다. 안 소장은 “사람들은 고통을 회피하려는 본능과 기쁨을 추구하려는 본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며 “고통을 회피하려는 본능이 기쁨을 추구하려는 본능보다 다섯 배가량 강하다”고 말했다. 모금 방송에서 불우한 모습을 과장되게 묘사해 이를 본 사람들이 동정심이나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모금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는 1993년 미국의 유명 사진작가 케빈 카터(Kevin Carter)가 찍은 사진이 논란이 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케빈 카터는 굶주린 소녀와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당시 기아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 사진으로 케빈 카터는 많은 매체들의 관심을 받아 유명세를 얻었다. 안 소장은 “케빈 카터가 소녀의 가난을 단지 동정을 자극하는 사진의 피사체로만 이용했다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고 케빈 카터의 사진 속 빈곤 포르노적 요소를 설명했다. 전 세계가 이 사건을 계기로 빈곤 포르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지만, 우리나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에서 빈곤 포르노에 대한 관심을 끄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서울특별시 중구청에서 ‘캠퍼스 밖 세상 알기-작은 방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 일명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이하 쪽방촌 체험)’을 계획했다. 최순정 중구청 사회복지과 주무관은 쪽방촌 체험에 대해 “청년들이 쪽방촌의 겉모습은 잘 알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청년들도 다른 생각으로 사회 문제에 접근하고 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기대와는 달리 사회 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 SNS)를 통해 ‘쪽방촌 체험은 쪽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단순히 봉사시간을 받기 위해 그들의 삶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빠르게 퍼졌다. 결국, 쪽방촌 체험은 빈곤 포르노적 요소가 포함돼 있다는 논란과 함께 무산됐다. 약 1년간 쪽방촌에 방문해 거주민들에게 투약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서은솔(약 14) 학우는 “쪽방촌 체험에서 ‘체험’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불쾌했다”며 “거주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프로그램을 계획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빈곤 포르노에 대한 엇갈린 시선
본지는 숙명인들이 빈곤, 질병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삶을 자극적으로 편집해 보여주는 빈곤 포르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설문은 숙명인 519명을 대상으로 지난 5일(화)부터 7일(목)까지 3일간 진행됐다. (정확도 95%, 오차범위 ±1.8%p)
조사결과 기금을 모금하거나 후원을 요청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숙명인은 전체의 76.5%(397명)였다. 이 중 79.1%(314명)의 학우가 모금 방송 속에서 빈곤 포르노적 요소가 느껴졌다고 답했다. 정유진(프랑스언어·문화 15) 학우는 “후원을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임에도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아 거부감이 들고 방송에 대한 신뢰감을 잃게 만들었다”며 “방송의 목적이 봉사보다는 장사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답했다. 방송의 빈곤 포르노적 요소로 인해 불쾌함을 느꼈다는 김한솔(아동복지 14) 학우는 “지나친 동정을 요구하는 영상이라 보고 싶지 않았고 이는 후원할 마음조차 없어지게 했다”며 “좀 더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기분 좋게 모금에 참여할 것 같다”고 모금방송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빈곤 포르노적 요소에 대해 지적했다.

과장된 시각적 자료로 불쾌감을 준다고 이야기하는 학우도 있지만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에 부합한다며 빈곤 포르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우도 있었다. ‘기금을 모금하거나 후원을 요청하는 방송에서 빈곤 포르노적 요소가 어떤 효과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고 답한 학우가 43.4%(225명)로 가장 많았다.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답한 학우가 33.3%(173명), 둘 다라고 답한 학우가 12.1%(63명)로 그 뒤를 이었다.

모금 방송이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는 구유소(식품영양 16) 학우는 “모금과 후원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며 “일반적인 상업 마케팅과 달리 사람들을 자극하는 광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자극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소영(통계 17) 학우 또한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 수 있다”면서도 “지나치게 사실과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답했다.

이처럼 빈곤 포르노가 기부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학우들과는 달리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대답한 권지엽(시각·영상디자인 17) 학우는 “사람들이 빈곤 포르노를 보고 동정심과 선한 감정이 동일하다는 착각을 하게 될 수 있다”며 빈곤 포르노적 요소를 포함한 모금 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지인(시각·영상디자인 17) 학우 역시 “수용할 수 없는 정도의 동정심 유발은 오히려 피로함을 준다”며 “이는 모금을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어지게 만든다”고 답했다.
 

빈곤 포르노, 누구를 위한 동정인가요?
빈곤 포르노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 팽팽히 대립하는 숙명인들처럼 빈곤 포르노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안 소장은 “모금 방송을 통해 단기간에 사람들이 모금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는 있다”면서도 “빈곤 포르노적 요소를 포함한 모금 방송이 사용하는 지나친 과장과 왜곡은 사람들의 주의를 그곳에만 집중시켜 ‘빈곤’이라는 본질적인 사회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빈곤 포르노의 부정적인 영향을 설명했다. 결국, 빈곤 포르노는 당장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소액의 모금액을 모으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지만, 방송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문제 가치를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수화(경영 14) 학우 역시 이와 같은 빈곤 포르노적 요소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학우는 “빈곤을 자극적으로만 다루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빈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며 “빈곤 포르노는 보여주기식의 목적만 있는 것 같다”고 빈곤 포르노의 문제를 꼬집었다.

이어 박 학우는 영상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빈곤 포르노적 요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동네를 안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벽화마을 사업의 경우에서도 빈곤 포르노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며 “빈곤 포르노가 대상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당장의 동정심만 이끌어내고 사회의 근본적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벽화마을도 근본적인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빈곤 포르노적 요소를 배제하고 올바른 기부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안 소장은 “윤리적인 기부문화가 형성되기 위해 고통받는 사람을 부각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통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부각시켜야 한다”며 “대중이 고통 받는 희생자들의 모습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도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의 결과물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빈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다”며 올바른 기부문화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모금 방송이 대중에게 당장의 동정심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대중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줄 수 있는 도움의 가치를 인식해야 만 사회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쪽방에 방문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건강을 챙겨드린다는 서 학우는 “빈곤 포르노에 대한 논란이 쪽방, 빈곤 속의 사회적 약자에 대해, 더 나아가 봉사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모금 방송을 통해 누군가의 가난을 바라볼 때, 그들의 가난과 고통을 직접 바라보며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자. 당장 보이는 장면에만 마음 아파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공감하고 변화해 갈 사회의 모습을 기대할 때 우리는 그 방송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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