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2017 머슬마니아(Muscle Mania)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사람이 있다. 바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겸 모델 이연화(여·27) 씨다. 이 씨는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어린 나이에 디자인 업계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떨쳤다. 이 씨는 지난 7월 tvN의 「뇌섹시대-문제적남자」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본지 기자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한 카페를 찾았다. 본지 기자와 처음 마주한 이 씨는 “학보사와 꼭 한 번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어요”라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과거의 제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죠”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달랐던 대학 시절, 꿈을 이루는 발판이 되다
이 씨의 본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이 씨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의 광고에 대한 전체적인 콘셉트(Concept)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무대, 소품, 스타일링, 모델 등의 연출을 총괄하는 직업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풍의 화보를 찍을 때 그에 걸맞은 패션과 소품을 무대에 배치하는 것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예술학과와 산업디자인학과를 복수전공한 이 씨는 예술과 관련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이 씨는 “전공인 예술학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작업하는 데 신선한 영감을 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씨는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식물 키우기, 스튜디오, 대리석 등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예술학이라는 신선한 전공의 조합이 그녀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경력을 쌓고 있는 이 씨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디자이너로 일하던 도중 우연한 기회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씨는 “‘제일기획’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처음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팅(Creative Directing)을 하게 됐어요”라며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화보나 영상 광고를 제작한다는 것이 즐거웠죠”라고 말했다. 이 씨는 제일기획과의 프로젝트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이후 이 씨는 본격적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이 씨는 대학 시절부터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대학교 3학년 때, 이 씨는 산업통상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최하는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최연소이자 여성 최초, 학생 최초로 파이널리스트(Finalist) 디자이너에 선정됐다. 당시 이 씨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저명한 디자이너들과 경쟁해야 했다. 이 씨는 “전문적인 디자이너보다 디자인에 대해 조금 더 창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파이널리스트 디자이너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장애로 겪은 좌절, 운동으로 마음을 디자인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꿈을 이룬 이 씨는 얼마 후 청각 장애라는 갑작스런 역경을 맞았다. 2년 전 여름, 여느 날과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이 씨의 오른쪽 귀가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이 씨는 평소 잔병치레가 없고 건강했기에 휴식을 취하면 금방 나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귀는 낫지 않았고, 결국 병원에서 ‘돌발성 난청’과 ‘이관개방증’으로 인한 청각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돌발성 난청은 징후 없이 갑자기 난청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관개방증은 코가 막혔을 때처럼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고 타인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를 뜻한다. 평소 사교적이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 씨는 “발음이 어눌해져 말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죠”라며 “방향감각까지 잃어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들리는지 짐작하는 것도 어려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귀에서 소음이 들리는 이명 증상까지 겪었다. 이 씨는 “항상 머릿속에 모기나 매미가 살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그녀가 겪는 고통을 토로했다.

예상치 못하게 장애를 갖게 된 그녀는 삶에 대한 의욕마저 잃었다. 그녀는 후천적으로 갖게 된 장애를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 씨는 “건강을 잃고 나니 지금까지의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이제껏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는데 하늘이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준 것인지 원망스러웠죠”라고 말했다.

삶의 의지를 잃은 이 씨는 1년간 방황했다. 당시 좌절감에 빠져있었던 이 씨에게 힘이 된 것은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이 씨에게 “하늘은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에게만 고난을 준다”며 “네가 시련을 견뎌내 더 강하고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고 위로했다. 이 씨는 이내 세상은 공평하다는 생각과 함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졌고 일상의 불편함에 익숙해지고자 했다.

삶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이 씨는 자신의 건강을 ‘디자인’하기로 결심했다. 과거 이 씨는 건강을 돌보지 않고 밤늦게까지 에너지음료를 마시며 오로지 일에만 열중했다. 장애를 가진 후 그녀는 자신이 여태껏 디자인했던 것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씨는 “철학적 관점에서 디자인과 예술의 근본은 인간의 몸과 마음에서 시작해요”라며 “껍데기가 아닌 몸과 마음을 디자인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 씨는 초심으로 돌아가 디자인의 근본인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디자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여왕이 된 이연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다
몸과 마음을 가꾸기 위해 운동에 열중하던 그녀는 트레이너로부터 머슬마니아(Muscle Mania) 대회에 도전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머슬마니아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심한 이 씨는 짧은 기간 안에 근육량을 늘리고 몸을 단련해야 했다. 운동을 하면서 귀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숨이 차면 귀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무산소 운동을 위주로 근력을 키웠다. 머슬마니아 대회 출전을 준비하면서 경험했던 모든 과정은 그녀에게 낯설었다. 이 씨는 “무대 위에서 심사위원에게 당당한 손짓을 하고 끼를 뽐내는 것이 어색했어요”라며 “대회를 위해 혼자 거울을 보며 포즈 연습을 하는 것이 민망했죠”라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 “어깨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힘을 주며 걸어야 하는 워킹(Walking)도 어려웠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 씨에게 머슬마니아 대회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씨는“디자이너인 제가 머슬마니아 대회에 출전했던 것은 이전에 시도해본 적 없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어요”라며 “처음이었기에 무작정 도전해볼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머슬마니아 대회라는 생애 최초의 도전을 위해 이 씨는 온 힘을 다해 운동에 열중했다.

노력은 빛을 발했다. 이 씨는 ‘역대급 그랑프리’라는 수식어로 ‘2017 머슬마니아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이 씨는 “힘들었던 기간을 이겨낸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해요”라며 “머슬마니아 대회 이후 스스로에게 ‘잘 견뎠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었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이 씨는 머슬마니아 세계대회에도 출전해 패션모델 부문 파이널리스트를 차지했다. 이 씨의 세계대회 출전은 디자인 스튜디오 직원들의 영향이 컸다. 이전 대회의 준비 기간 동안 이 씨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직원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랑프리 수상 후엔 인터뷰와 촬영으로 더욱 바빠져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 씨는 세계대회에 출전해 직원들에게 자신이 해왔던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씨는 “세계대회에 출전한 모습을 보고 ‘고생했다’며 격려해주는 직원들에게 감동을 받았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부터 머슬퀸(Muscle Queen)까지,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온 이 씨의 최종 목표는 ‘문화적으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씨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 대중에게 교훈을 주고 싶어요”라며 “최종 목표와는 별개로 식물 가꾸기와 인테리어, 요리 등 좋아하는 것이 많아서 체력이 허락하는 한 모두 도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인생을 색깔이 있는 작은 모래를 쌓는 것에 비유한다. 이 씨는 “대학생 시절 생물학을 들었던 일 년은 초록색 모래고, 예술학을 공부했던 기간은 보라색 모래에요”라며 “그런 작은 모래들이 모여 자신의 색깔이 되고 직업이 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매 순간의 선택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다채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제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은 저예요” 인간 이연화의 꿈은 인생을 다시 살아도 좋을 정도로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과거 명예와 재력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았던 이 씨는 시련을 겪은 후 이는 모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씨는 “인생이라는 영화의 장르가 누군가에게는 멜로일 수도 있고 누아르일 수도 있어요”라며 각자 다른 행복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씨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세상은 공평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저도 장애를 갖게 된 후 힘들었지만 시련을 이겨내면서 행복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라며 “고통이 큰 만큼 깨닫는 것도 많죠”라고 말했다. 고난 끝에 단비가 오듯, 장애라는 역경을 이겨낸 이 씨는 그녀만의 행복의 기준에 맞춰 오늘도 꿈을 위해 전진하고 있다.

 

                              ▲ 이연화(여·27) 씨가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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