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은 우리의 음악이지만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일반 라디오 방송에서 서양의 클래식음악은 많이 들려주지만 국악은 전문 프로그램이 아니면 듣기 힘들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악을 알리고자 국악 버스킹(Busking)을 시작한 젊은이들이 있다. 바로 ‘국밥’(국악으로 밥벌어먹기)팀이다.
무용을 하는 이이령(여·27), 가야금을 맡은 이현정(여·27), 비파를 연주하는 현수진(여·27) 씨로 이뤄진 국밥팀은 국내외에서 국악 버스킹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지 기자는 이들의 도전담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18일(토) 잠실 롯데월드(Lotteworld) 민속박물관 전통 혼례촌에서 그들을 만났다.

국악을 향한 열정으로 시작된 연주
국밥팀은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국악 버스킹을 시작했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동창인 팀원들은 취업하기 전 마지막으로 추억을 남기고자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이이령 씨는 “저희 전공인 ‘국악연주와 한국 무용을 활용해 여행경비를 마련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그러다 버스킹을 하면서 여행을 하자는 의견이 나와 처음 팀이 결성됐죠”라고 말했다.
국밥이라는 팀 이름은 국악 전공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던 중 만들어졌다. 이현정 씨는 “팀원들과의 모임에서 ‘국악으로 밥 벌어 먹을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주제가 나왔어요”라며 “그게 ‘국밥’이라는 팀 이름으로 이어진 거죠”라고 말했다. 우연찮게 나온 대화 주제가 팀의 이름이 된 것이다. 국밥이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임시로 붙인 이름이었으나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팀의 정식 이름이 됐다. 한수진 씨는 “많은 사람들이 국밥이라는 이름을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다고 말해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당시 버스킹에 대한 확신이 없던 팀원들은 스페인을 다녀온 후 팀을 해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팀원들의 국악에 대한 열정과 팀에 대한 애정은 국악 버스킹을 계속하게 했다.
열정만으로 시작한 팀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이현정 씨는 “부모님도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하길 바랐어요”라고 말했다. 가족뿐만 아니라 몇몇 국악 전공자들은 흔히 볼 수 없는 국악연주와 무용의 조합에 의구심을 표했다. 또한 격식을 중요시하는 국악을 거리에서 공연한다는 시도도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이처럼 국밥팀의 버스킹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 시작했지만 국악을 알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계속됐다. 국악 버스킹에 대해 이이령 씨는 “가까운 곳에서 국악을 알릴 수 있는 장소가 거리라고 생각했어요”라며 “공연장에 직접 찾아오기 힘든 사람들에게도 국악을 들려주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국밥팀은 자신들의 일에 있어서 재미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처음에는 팀 내 의사결정을 다수결로 했던 국밥팀이 만장일치로 의사결정 방식을 바꾼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이령 씨는 “이 중 한명이라도 이 일에 흥미를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며 “흥미가 있기에 오랫동안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현정 씨도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고 믿어요”라고 말했다.

 

낯설었던 시작, 거리에서 예술을 펼치다
수많은 공연을 했던 국밥팀이었지만, 버스킹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장비가 잘 갖춰진 무대와 달리 아무것도 없는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낯설었다. 관객들의 외면도 두려웠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보인다는 점이 처음에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이 점은 국밥팀에게 매력으로 느껴졌다. 이이령 씨는 “관객의 표정 하나하나가 다 보여 저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느꼈어요”라며 “거기서 느끼는 희열이 기존 무대에서의 희열보다 더 컸죠”라고 말했다. 한수진 씨는 “다른 공연들과는 달리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국밥팀 공연은 더욱 의미 있죠”라며 국밥팀의 장점을 설명했다.
버스킹에 익숙해진 국밥팀이지만, 낯선 나라에서 국악을 알리기란 쉽지 않았다. 국밥팀은 해외에서 더 효과적으로 국악을 알리고자 해당 국가의 민속곡과 우리나라 민속곡 등 다양한 곡을 준비했다. 시도한 곡에 따른 반응은 나라와 도시에 따라 달랐다. 우리나라 민속곡을 더 선호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자신들에게 더 익숙한 자국의 민속곡을 선호하는 나라도 있었다. 같은 나라 내에서도 도시와 지방에서의 반응은 달랐다. 이이령 씨는 “바쁜 사람들이 대다수인 도시와는 달리 사람이 적은 지방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음악을 들어줬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국밥팀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공연을 준비했다. 이이령 씨는 “여러 나라를 다녀오니 나라마다 곡에 대한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죠”라며 “앞으로는 방문할 나라의 특성을 좀 더 고려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1월에 갈 예정인 아프리카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무대에 더 중점을 둘 계획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를 넘어 미국,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버스킹을 한 국밥팀은 버스킹 활동을 하면서 각자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이현정 씨는 “국밥팀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뿌듯함을 표했다. 현수진 씨도 “버스킹을 하면서 적지만 돈을 벌고 많은 응원도 받아요”라며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국밥팀의 공연,
한 편의 영화가 되다

국밥팀은 사람들이 국악 공연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해외 음악의 연주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국악 연주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이령 씨는 “공연장에서 직접 감상하는 국악 공연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익숙하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동시에 여러 곳에서도 상영 할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죠”라며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국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악으로 밥벌어먹기’다. 이현정 씨는 “여러 시리즈의 다큐멘터리지만, 거기에 담겨진 내용은 같은 맥락이에요”라며 “국악으로 밥을 벌어먹는 장면은 꼭 나오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국악’을 좋아하는 관객뿐 아니라 청춘들의 공감도 자아낸다. 20대 여성 세 명이 열정만 가지고 시작한 도전이기에 같은 나이대의 청춘들에게도 공감을 얻는다. 현수진 씨는 “저희는 ‘날 것’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꾸밈없는 그들의 모습이 담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받는 것이다.
지금은 2편까지 제작이 완료됐지만, 처음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해외로 버스킹을 하러 가기 위해 팀원들 모두가 인천 공항에 모인 상황에서 출국 직전에 영상 담당자로부터 ‘같이 못 가겠다’는 내용을 문자로 통보 받은 것이다. 이미 기업과 대중에게 후원을 받아 영상을 만들겠다고 약속을 한 상황에서 발생한 난감한 상황이었다. 결국 인천 공항 근처에 살고 있던 친구들에게 노트북을 빌리고, 면세점에서 산 카메라로 스스로 촬영을 해 영화를 만들었다. 해당 영화가 바로 국밥팀 다큐멘터리 1편, 스페인 여정이다.
2편인 미국에서의 여정도 평탄하진 않았다. 미국에 도착하고 보니 악기가 도착하지 않아 하루를 더 기다려야만 했다. 사람만한 크기의 악기이기 때문에 운반도 힘들었다. 또한 이동 거리가 길다보니 차를 타면 최소 6시간에서 10시간은 운전을 해야 했다. 차 안에서 거의 모든 생활을 해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2편을 촬영하기 전 다큐멘터리의 피드백을 받아 전문적으로 촬영을 했지만 국밥팀만의 색깔이 느껴지지 않은 것도 새로운 고민이 됐다.
국밥팀은 일 년에 한 편씩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2015년 스페인 버스킹부터 시작해 매년 진행하는 해외 버스킹을 2020년까지 촬영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총 다섯 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현정 씨는 “총 다섯 편의 다큐멘터리를 묶어서 한 편의 영화로 상영하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라고 말했다. 현수진 씨는 “프로젝트를 하며 험난했던 일이 많았어요”라면서도 “결과물이나왔다는 것에 의미가 있죠”라고 말했다.

“겁내지 말고 도전하세요” 국밥팀이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일단 도전해보라는 것이다. 국밥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끝까지 도전하는 삶을 지향하며 이를 몸소 실천했다.
국밥팀은 “짧게 보면 돈만 추구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긴 하죠”라면서도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 투자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들의 조언은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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