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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갇힌 여성들, "알을 깨고 나와라!"

기사승인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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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과 ‘여성스러움’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광고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단어다. ‘여성스러운’ 의류의 광고와 여성성을 위해 온갖 수술을 해야 한다는 홍보 글을 보면 여성성은 마치 여성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진리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포털사이트에 여성성을 검색하면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여성성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글을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 여성성이라는 개념이 과거에 여성의 허리를 조였던 코르셋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회가 만든 ‘여성’
미국의 성 역할 연구가 산드라 벰이 제시한 여성의 특성에는 ‘수줍어한다’ ‘온정적이다’ ‘얌전하다’ ‘동정심이 많다’와 같은 성질들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성격이 정말 모든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까. 미국의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는 ‘뉴기니 참 불러 족의 여성은 지배적이고 공격적이며 몸단장도 하지 않는 반면 남성은 수동적이고 예술적이며 섬세하고 의존적이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또한 그녀는 아라페쉬족과 먼더거머족의 사회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두 개념 간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원홍 등 여성학 전문가들이 집필한 「오늘의 여성학」이라는 책에 의하면 여성성은 생물학적인 요소가 아닌 개인이 속한 문화에서 성 역할의 사회화를 통해 성립된 개념이다. 사회가 성의 이중 규범을 토대로 성별에 따라 각각 다른 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고정적인 여성성을 개인이 받아들이는 데 가족, 학교, 대중매체 등이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가족이라는 범위 내에서 부모는 아동에게 여성성, 남성성에 따른 성 역할을 기대한다. 또한 사회 속 불평등한 성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양육방법과 언행에 녹아들고 여성은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다.

책에 따르면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부터 성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의 영향력이 나타나고 있다. 교과서의 삽화에서 남아는 축구, 야구 등 활동적인 놀이를 즐기는 반면 여아는 주로 책 읽기, 산책, 고무줄놀이 등 정적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남자 중·고등학교의 교훈이 ‘용감함’ ‘의지’ ‘신념’ 등의 강인한 분위기라면 여자 중·고등학교의 교훈은 주로 ‘희생’ ‘인내’ ‘사랑’ 등으로 전통적인 여성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린이가 가장 많이 노출되는 대중매체도 여성에게 여성스럽기를 강요한다. 어린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만화 속 남성 캐릭터는 대부분 강하고 용감하며 연약한 여자를 보호해 주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반면 여성 캐릭터는 의존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묘사된다.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코르셋
공교육, 대중매체,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통해 학습되고 수용되는 여성성은 여성들에게 일종의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평소 여성성 프레임으로 인해 잦은 불편함을 겪은 이경민(프랑스언어·문화 17) 학우는 “방송매체 속 여성들은 모두 날씬한 몸매에 흰 피부, 긴 머리, 그리고 상냥함 등 전형적인 여성성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학우는 “사회에서는 그들이 가진 일률적인 미를 마치 여성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외양적 형태로 여기는 것 같다"며 영향력이 강한 방송매체가 여성성 프레임을 생산하며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학우의 친구들 중 상당수는 고정적인 미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성형을 감행했다. 이 학우는 개인으로서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린 여성성 프레임을 막아 낼 수 없었던 당시의 무력감과 허탈함을 떠올리며 여성성 프레임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한편 박도은(여·21) 씨는 주위 사람들의 언행이 여성성 프레임을 생산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릴 적 야외에서 뛰어노는 것을 즐겼던 박 씨는 주위 어른들에게 ‘여자애가 피부 관리도 안 한다’며 꾸중을 들어야 했다. 더 나아가 박 씨는 “사람들이 칭찬으로 생각하는 ‘너는 참 여성스럽다’는 말이 여성을 억압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치 사람들이 자신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박 씨는 “여성스럽다는 말을 들을 때 나의 본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내 자신을 그 틀 안에 맞춰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여성성 중 특히 연약함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회가 여성을 무조건 연약하다고 단정 짓고 여성스러움이라는 개념 안에 연약함을 포함시켜 여성의 생활에 남성보다 더 많은 제약을 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성들은 사회 속 만연한 여성성 프레임을 학습하고 수용하게 되면서 불편함을 느끼고, 그 프레임에 맞춰 자신을 바꿔야 하는 일종의 강박까지 경험하고 있다. 여성성이라는 프레임이 ‘여성의 성질’ ‘여성적 성격’이라는 표면적 의미와는 다르게 모든 여성들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성별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다
책 오늘의 여성학에서는 ‘어느 누구든 남성적 아니면 여성적이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억압한다’며 각자의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양성성의 추구가 보장될 때 모든 개인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젠더리스(Genderless) 사회를 꿈꾸는 최은혜(정치외교 18) 학우는 “7살부터 내 안에 사회에서 일컫는 여성성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어렸을 적부터 사회의 이분법적인 성 관념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최 학우는 스스로 젠더(Gender) 공부를 하면서 자신 안의 성별 이분법적인 기준들을 타파해 나갔다. 최 학우는 “젠더 공부를 진행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며 “그 과정에서 성별 기준을 지우다 보니 성별을 고정하지 않고 젠더리스로 살아가는 것이 내 본연에 맞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젠더리스를 추구하게 되면서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어 만족한다는 최 학우는 “지금은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괘념치 않지만, 처음에는 나의 겉모습과 정체성에 대한 비난을 견디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학우가 가장 불편한 점은 따로 있었다. “내 정체성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 관념에 의해 정의할 수 없는데, 사회에서는 설문조사를 진행할 때, 사이트에 가입할 때, 심지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칠 때도 나에게 여성과 남성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며 사회가 강요하는 이분법적인 성 관념이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학우는 성별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의 고정적인 성 이분법적인 프레임이 그대로 반영된 공교육이 실행됨으로써 끊임없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프레임 속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최 학우는 유아기부터 개인에게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주입시키는 사회를 비판했다. 최 학우는 “여자아이들의 장난감은 대부분이 모성애와 가사노동을 강조하는 청소도구, 인형 등이다”며 “반면 남자아이들은 로봇, 공룡 등의 장난감을 갖고 논다”고 말했다.

최 학우는 여성성 프레임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주위 시선이 두려워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를 주저하는 여성들에게 “처음엔 누구나 여성성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다”며 “하지만 벗어나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이 누군지 찾을 수 있고, 규격화된 성별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응원을 전했다.

우리 사회 속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고정적인 여성성, 남성성은 되짚어 보는 순간 생물학적인 특징이 아닌 사회가 개인의 유아기부터 꾸준히 성 이분법적인 사고를 주입시키며 유지하고 있는 프레임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성별에 따른 프레임이 사회에 만연한 만큼 프레임 밖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에 숨 막힐 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불편하고 따가웠던 그 시선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프레임의 불편함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함께 비로소 진정한 자신이 됐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여성성 프레임에 갇혀 고민하는 여성, 그리고 그 프레임 밖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여성 모두가 프레임 밖에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좀 더 힘이 나지 않을까.

임여진 기자 smplyj94@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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