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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제 삶의 전부는 아니에요"

기사승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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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반기, 공기업에서 본격적인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됐다. 스펙, 외모, 학력 등과 상관없이 공정한 기회를 부여해 실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였다. 우리는 스펙으로부터 정말 자유로워졌을까.

최근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잡코리아(JOBKOREA)에선 올해 졸업한 4년제 대학 졸업생 944명을 대상으로 신입직 취업준비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준비하고 있는가’의 문항에서 전체 응답자 중에 52.2%가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아직도 스펙을 놓지 못하고 있다. 서로의 스펙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우리는 언제쯤 온전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도 행복할 자격이 있어요”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스펙이 아닌 시대. 극심한 취업난에 ‘동아리 활동’ 대신 ‘스펙 쌓기’를 선택한 청년들. ‘캠퍼스 낭만’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처럼 낭만이 사라진 대학에서 ‘졸업장이 자신의 최대 스펙’이라며 행복을 추구하는 학우들이 있다.

 

조기 졸업을 앞둔 조수진(가족자원경영 15) 학우에게 지난 3년간의 학교생활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조 학우는 학생회, 본교 리더십 그룹 폴라리스(POLARIS), 연합 발표동아리 스프링(SPLing) 등 미래를 위한 스펙 대신 현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초점을 맞춰 활동했다. 조 학우는 “제가 속한 학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라며 활동을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조 학우가 스펙보다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게 된 데는 수강했던 강의의 영향이 컸다. 본교 임상욱 기초교양대학 교수의 ‘만물학개론’ ‘역량개발’ ‘철학개론’을 수강하며 생각이 바뀌었다는 조 학우는 “임 교수님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누구나 지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씀이 제 신념에 영향을 줬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조 학우는 “‘너는 존재 자체로 빛난다’ ‘네가 하는 모든 것을 응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이 많았어요”라며 본교에서 받은 많은 응원을 떠올렸다.
 

알찬 대학 생활을 보낸 조 학우지만 주변에서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펙이 되는 건 대외활동이나 인턴이다’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남에게 뒤처지진 않을까’라는 생각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학우는 “불안감보다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게 더 싫었어요”라며 “제가 좋아서 한 활동이 무의미한 건 아니니까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예요”라고 그녀가 가진 삶의 가치를 말했다.
 

전유리(법 17) 학우도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전 학우는 “중학생 때까진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원하는 것을 하기보단 친구들이 하는 활동을 따라 학교생활을 했어요”라며 “나중에 제 모습을 돌아보니 후회가 남았죠”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 전 학우는 축구, 배구동아리 등 그동안 관심을 두고 있던 활동을 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즐겁게 보냈다. 전 학우는 “출전하고 싶었던 축구 경기가 시험 기간과 겹쳤지만 망설임 없이 출전했어요”라며 “비를 맞으며 하는 축구가 참 재밌었어요”라고 행복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전 학우는 본교 법학부에 진학해서도 기타동아리, 수화 공부, 아르바이트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했다. 전 학우는 “특히 작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중앙 클래식 기타 동아리 ‘설현애’에서 연주회를 준비했어요”라며 “무사히 연주를 마쳤을 때 뿌듯함을 느꼈죠”라고 미소 지었다.
 

스펙 한 줄보다 값진 시간

스펙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 동아리에서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학우들도 있다. 교육 봉사동아리 ‘아름터’에서 4학기째 활동 중인 구나연(행정 16) 학우는 2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기 체험과 같은 문화예술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과 놀이 형식으로 수업하는 것이 즐겁다는 구 학우는 방학 기간 중에도 봉사 활동을 준비한다. 봉사를 통해 얻는 보람이 그녀에게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도록 동기부여를 하기 때문이다. 구 학우는 “봉사하는 시간은 바쁜 학교생활 중 휴식 시간이 돼줘요”라고 말했다.
 

과도한 스펙 쌓기 경쟁으로 인해 청년들에겐 봉사조차 스펙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구 학우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봉사 활동을 할 때의 계기나 동기가 굉장히 중요해요”라며 “스펙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의 태도가 봉사를 받는 대상에도 전달돼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요”라고 말했다. 이어 취업을 위한 준비 때문에 봉사를 실천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구 학우는 “봉사는 큰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라며 “재택 봉사나, 단기적인 봉사처럼 가볍게 할 수 있는 봉사도 많기 때문에 봉사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재능기부 봉사동아리 ‘씨엣스타’에서 작년 9월부터 봉사를 시작한 한수정(식품영양 17) 학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 음악, 체육 등 여러 가지 예체능 과목을 가르친다. 지금은 꾸준히 봉사하고 있는 한 학우지만 고등학생 시절에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봉사 활동을 했었다. 한 학우는 “단순히 대학을 가고 싶어서 했던 활동은 학교생활기록부에 한 줄의 글로만 남을 뿐 왜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남아요”라며 “지금 시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알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봉사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봉사를 가는 날이면 등교할 때보다 2~3시간 일찍 일어나 수업 준비를 해야 하지만 한 학우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한다. 스펙만을 쌓느라 대학생일 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봉사 경험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한 학우는 “봉사를 하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요”라며 “봉사 경험은 목적이 없는 스펙보다 값진 것을 가져다줄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스펙 경쟁, 이의있습니다”

청년들은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의 스펙을 비교하며 위안을 얻기도, 때로는 좌절을 겪기도 한다. 네이버(NAVER) 인기 카페인 ‘스펙업(SPEC UP)’에는 자신의 스펙을 평가해달라는 글이 수도 없이 올라온다. 그들이 얼굴도 모르는 남들에게 평가받고 싶어 하는 스펙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닌 영어성적, 인턴 경력 등 정량적인 지표들이다.
 

우리 사회의 취업 준비생 중에 취업 준비 기간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7일(수), 잡코리아·알바몬(albamon)에서는 신입직 취업 준비생 2,188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취업 준비할 때 애로사항’을 묻는 말에 설문 응답자의 대부분인 96.4%가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다’고 답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큰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취업 준비에서 가장 힘든 점’을 묻는 말에는 ‘취업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 ‘진로선택 즉 직무 분야 결정이 어려움’에 이어 ‘스펙 쌓기’가 29.3%로 3위를 차지했다.
 

설문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스펙만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선 우리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임 교수는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해요”라며 “대학에서도 경쟁을 강요하는 상대평가 제도 대신 학생들 서로가 협력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와 경쟁할 때 모두가 성장하며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조 학우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는 태도는 좋지 않아요”라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는 ‘오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해요”라며 “행복을 미루지 말고 오늘의 행복을 위해 살아보길 바라요”라고 조언했다.


한 학우는 오버 스펙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에 “스펙이 많은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행복을 외면하고 단순히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서라든지, 불안해서 스펙을 쌓는 것이라면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스펙보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신념을 가진 학우들은 공통적으로 ‘스펙을 쌓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남들이 쌓는 스펙을 좇기 전에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진다면, 우리는 개개인에게 꼭 맞는 활동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박희원 기자 smpphw94@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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