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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만드는 평등한 세상, 성평등 언어사전

기사승인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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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유모(母)차’ ‘자(子)궁’ ‘저출산(出産)’ 등의 단어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왜 남성의 본가는 ‘시댁(宅)’, 여성의 본가는 ‘처가(家)’로 불리며, 왜 부친 쪽 부모는 친할 친(親)이고 모친 쪽 부모는 바깥 외(外)인가? 이렇듯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언어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성평등의 시작은 단어로부터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지난 7월 ‘2018 서울시 성평등 주간’을 맞아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꾼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캠페인(이하 성평등 언어사전)”을 진행했다. 성평등 언어사전은 일상 속에서 흔히 사용되는 성차별 언어를 개선하고자 시작된 캠페인으로, 지난 5월 30일(수)부터 6월 11일(월)까지 총 608건의 시민 제안을 받은 후 전문가 자문 회의를 거쳐 선정됐다.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는 ▶비속어 ▶비표준어 ▶어법에 맞지 않는 언어 ▶또 다른 차별 언어 ▶의미가 달라지는 것 ▶대안 제시(성평등 언어)가 불명확한 것 등을 제외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언어 10건을 먼저 선정했다. 그 중에는 ‘저출산’과 ‘몰래카메라’ 등의 단어도 포함됐다. 저출산은 여성이 아기를 적게 낳는다는 뜻이다. 시민들은 이는 곧 인구문제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고 제안했고 아기가 적게 태어난다는 의미의 ‘저출생’을 사용하기로 했다. 몰래카메라라는 단어는 범죄임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불법촬영’으로 대체됐다.

성평등을 향한 관심은 뜨거워지고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관계자는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성평등 정책 수준과 실제 시민이 일상에서 느끼는 성평등 의식수준에 차이가 크다”며 “올해는 기존의 변형을 넘어 보다 근본적으로 일상생활 내 성차별 언어, 문화, 관행 등에 대한 개선요구가 높다”고 전했다. 이어 “한마디의 말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일 수 있다”며 “성평등 언어사전 발표 이후, 성차별 언어를 고쳐 쓰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7월 2일(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사에서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지난 7월 SBS 뉴스 역시 인구 감소와 관련해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한 지난 7월 4회차까지 진행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역시 시위 정식 명칭에 ‘불법촬영’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본교 이화영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진행된 성평등 캠페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교수는 “언어란 실제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측면에서 주체를 정체화하는 구성요소가 된다”며 “이번 캠페인이 즉각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할지라도 청소년 세대에게 특히 두드러진 영향을 줄 것이다”고 말했다.

 


편안한 우리 가족, 불편한 호칭

1차로 진행된 성평등 언어사전은 추석을 앞두고 2차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_추석특집’으로 이어졌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지난달 4일(화)부터 11일(화)까지 일주일간 진행된 시민참여캠페인에서 ‘명절에 성차별적인 언어나 행동(관행)을 듣거나 겪은 적이 있나요?’라는 조사를 했다. 이에 참여자 중 80% 이상이 성차별 언어나 행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2차 캠페인에서는 3건의 성차별 언어로 ‘시댁’ ‘친할머니/외할머니’ ‘여자가/남자가’가 선정됐고, 각각 ‘시가’ ‘할머니’ ‘사람이/어른이’가 대체언어로 제시됐다. 어린 시절부터 성차별적인 가족 호칭에 대해 의문을 느꼈다는 최민승(체육교육 16) 학우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를 구분 짓기 위함이라면 친과 외가 아니라 다른 단어를 써서 의미를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 학우는 “여성에게만 가사노동이 집중되는 성차별적인 명절 문화가 이번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_추석특집’을 통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여성가족부 역시 성평등 관점에서 가족제도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8월 31일(금) 제3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이하 3차 계획)을 보완해 발표했다. 3차 계획을 통해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가계생산 위성 계정’을 개발하고, 남편의 가족만을 높여 부르는 ‘도련님’과 ‘처남’ 등의 호칭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국립국어원 조사결과 “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 아내 동생은 ‘처남, 처제’로 부르는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65%로 조사된 바 있다. 여성가족부는 문제의 본질은 호칭 자체가 아닌 양측을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고 전했다. 이에 최 학우는 “기존 호칭은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미비하더라도 누구든 불평등하다고 생각할 만한 호칭이었다”라며 “이제라도 실행됐으니 널리 알려져 사회에 잘 정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교수 역시 “이러한 캠페인을 지속해서 진행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일회성이 아닌 모든 사회영역에서 성평등 언어를 쓸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은 필수다”고 전했다.

 


“아직도 낯설고 어색한가요?”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성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여러 캠페인과 정책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점은 존재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관계자는 “가족 호칭 등 일부 언어의 경우 대체언어를 찾기 어렵다”며 “제안된 대체언어가 또 다른 성차별적 의미를 담거나 단어의 의미가 변질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3차 계획에서도 성차별적 가족 호칭의 대체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대체 단어를 찾기 위해 공청회나 토론회를 통해 시민 다수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성평등 언어사전에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의견들도 존재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일각에서는 성차별 언어와 행동을 개선하려는 각종 노력이 여성만을 위한 것, 여성만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오인하고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며 “성차별 언어와 행동을 개선하는 것은 여성, 남성 모두의 참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속 존재하는 성차별 언어와 행동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의 인식변화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성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 교수는 “정부와 학교, 조직에서 통용되는 공식적인 언어를 새로운 성평등 언어로 수정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많이 접하는 교과서, 언론, 각종 문서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본교 학우들 또한 관심을 갖고 일상생활에서 이를 활용하려 해야 한다”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평등 언어가 일상적 언어로 자리 잡도록 도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학우 역시 성평등언어사전에 대해 “사전 상에만 등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진짜 언어가 됐으면 좋겠다”며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성평등 언어가 받아들여지고, 성평등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최 학우는 “학우끼리라도 성평등 언어를 잘 인지하고, 일상에서 꾸준히 사용하며 퍼져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도 사람들의 개선하기 위해 성평등 언어사전에 대한 홍보를 진행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성평등 캠페인을 확산할 계획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관계자는 “서울시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에 성차별 언어를 제안해 총 8건의 단어가 선정됐고,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실을 통해 서울시 및 관계기관에 바른 언어 사용을 권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시민의 제안을 받아 성차별 언어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사업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1975년 미국 심리학회와 맥밀런 출판사에서는 작가·저자·연구자들에게 성적으로 평등한 언어를 사용하라는 지침이 있어 왔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움직임은 상당히 뒤처졌다고 볼 수 있다. 잘못 뿌리박힌 성 고정관념으로 인해 최 학우는 평소에 ‘여자치고 운동을 잘하네’ ‘여자치고 용감하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주위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내가 그냥 운동을 잘하는 거지, 여자치고 잘하는 것이 아닌데’ ‘여자는 용감하면 안 되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비단 최 학우 뿐만의 일이 아니다. 변화는 필요했고, 드디어 시작됐다. 오래도록 이어져온 성 고정관념이 더 이상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 대물림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새롬·한가람 기자 smplsr96@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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