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은행에선 대기 번호를 알려주는 알림음과 텔레비전 소리 대신 커피 볶는 냄새가 나고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관에선 상영 시간을 기다리며 노래방을 즐기고 카페에선 메뉴가 나오기 전에 저명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한다. 이처럼 기다림의 지루함을 극복해 새로운 자극을 주는 공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다양한 공간이 결합한 카멜레존(ChameleZone)이다.


소비자에 따라 특‘색’이 변화하다
카멜레존이란 카멜레온(Chameleon)과 공간(Zone)의 합성어로 카멜레온처럼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현대 복합 공간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오프라인(Offline) 시장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고, 기존의 운영 방식과 차별화된 생존전략이 필요해지면서 카멜레존이 등장했다.

변화된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여러 공간이 결합하고 있다. 본교 김민정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삶의 질을 중시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자 한다”며 “시각적, 감각적, 정서적 경험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기존 방식의 매장에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프라인 사업주는 자신이 가진 공간을 문화예술요소와 공유하고 협업해 매장을 재탄생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직접 체험 하는 것을 여전히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지선(중어중문 16) 학우는 “현장에 직접 방문해서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더 와 닿는다”며 “일정 시공간에서 타인과 직접적인 교류를 해야 작품 분위기에 몰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15일(목) KT그룹의 디지털 미디어렙 나스미디어가 발표한 2018 인터넷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 이용률은 인스타그램(Instagram)이 51.3%로 두 번째로 높았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일상’에는 1억6천 개의 게시물이 ‘#핫플레이스’(Hot-place)에는 179만 개 게시물이 공유됐다. 인스타그램에 특별한 공간에서 경험한 남다른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이러한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독특한 공간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카멜레존은 더욱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하나의 공간에서 얻는 두 가지 즐거움
카페와 문화예술 분야의 결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카멜레존이다. 잠실에 위치한 카페 피치그레이(Peach Gray)에선 음료를 주문하면 팔레트와 종이, 붓을 같이 제공해 수채화나 손글씨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최수진(행정 18) 학우는 피치그레이에 다녀온 후 “친구와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카페에서 그린 그림을 집에 가져갈 수 있어서 추억을 남기기에도 좋다”며 재방문 의사를 밝혔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카페가 단순히 음료와 요식 소비만 이뤄지는 공간이었지만 오늘날엔 소비자가 감성을 소비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며 카페 흐름의 변화를 분석했다.

은행 역시도 특별한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와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로 오프라인 고객 유치 필요성을 느낀 KEB하나은행(이하 하나은행)은 생존방안을 모색했다. 핵심 상권에 위치한 공간 자산을 타 계통의 매장과 공유해 오프라인 은행의 집객력을 높이고자 ‘컬쳐뱅크’(Culture Bank)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직장인 인구 비율이 높은 하나은행 광화문역 지점에선 지난해 4월부터 북맥(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마신다), 서점, 카페 등을 운영하고 작가 초청 강연 등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대기 공간으로 사용되던 공간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최진영 하나은행 컬쳐뱅크 TFT 대리는 컬쳐뱅크로 고객들의 체감 대기시간이 줄어 고객과 직원 모두의 부담을 덜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어 그는 “은행 고객들이 카페, 서점의 손님이 되기도 하고, 문화공간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하나은행과 거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상생 효과에 대해 언급했다. 협업 제휴처 김진양 북바이북(Book By Book) 대표는 “종로구 직장인 할인과 하나은행 제휴카드 할인으로 근처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하나은행 직원의 이용률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도시 전체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카멜레존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시 도시재생의 일환인 ‘서울로 7017’과 ‘플랫폼 창동 61’이 대표적이다. 서울로 7017은 19‘70’년에 만들어진 고가도로를 20‘17’년에 사람 중심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의미다. 얼핏 보면 서울로는 서대문구, 중구, 용산구를 연결하는 단순한 육교처럼 보이지만 각 계절에 맞는 축제와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원예 프로그램, 세밀화 교실 등이 이뤄지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안선 푸른도시국 공원녹지정책과 주무관은 “서울로 7017이 타임지에서 추천 여행지 100선으로 선정됐다”며 “서울로는 관광지의 역할과 더불어 지역민에게 친근하고 유용한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창동 61’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컨테이너에 설치된 공연 중심 복합문화공간이다. 총 컨테이너 61개로 이뤄진 플랫폼 창동 61은 18,400명 수용 규모의 대형 실내 공연장 ‘서울아레나’의 홍보목적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조현석 인터파크 창동 씨어터 전략기획팀 PD는 “시민에게 다가가기엔 홍보관으론 부족하다고 생각돼 공연장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플랫폼 창동 61은 문화 활동 활성화를 위해 3D 페인팅 교실, 영어 북라운지(Book Lounge), 뮤지컬 및 모델 수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조 PD는 “도봉구, 노원구, 성북구, 강북구를 포함하는 동북 4구를 중심으로 문화 활동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대학생을 위한 밴드 페스티벌, 패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이 항상 긍정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생활양식 제안형 복합점포인 ‘츠타야서점’은 1983년에 오픈한 오사카 히라카타점을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 분점이 생기며 발전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 매장들이 잇따라 폐점하며 쇠퇴하고 있다. 김 교수는 “CD, DVD 대여 사업 부진과 지역마다 고객의 생활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며 그 원인을 설명했다. 이어 다른 지역에서 컬쳐뱅크를 준비 중인 최 대리는 “협업을 이루기 위해선 지역적 여건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며 “철저한 상권조사 이후 융합을 이룰 콘텐츠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방에서 세탁을, 고정된 공간의 틀을 벗어나다
매장이나 도시재생을 위한 거리의 카멜레존 뿐만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도 카멜레존이 조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공간 활용 방식은 주방의 공간을 재구조화해 제2의 거실로 활용하거나 개인 공간을 더 넓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빌트인(Built-In) 가전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 빌트인이란 건물이나 공간에 필요한 각종 기기나 가구, 수납공간들을 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체형 빌트인 구조 원룸에서 자취하는 김주희(생명시스템 18) 학우는 “주방의 인덕션(Induction) 아래에 드럼 세탁기가 설치된 구조 덕분에 작은 자취방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며 “한 곳에서 빨래, 요리 등을 해결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은 전체 가전 시장의 40%가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LG전자와 삼성전자 등 여러 국내 가전제품 기업들도 빌트인 시장을 확장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공간에 맞춰 가전을 설치한 대표적인 사례는 가게나우(GAGGENAU)다. 가게나우 국내 공식 수입 총판 화인어프라이언스(Fine-Appliance) 관계자는 “소비자의 가구 사용 동선이나 취향에 따라 주방가구를 제작해 붙박이를 통해 방을 구성한다”며 붙박이 가구의 장점으로 소비자의 선택폭이 늘어남을 꼽았다.

공간 활용도가 늘어난 반면 불편한 점도 있다. 김 학우는 “빌트인이라 세탁기 규격이 작아서 몇 번에 나누어 세탁을 해야 한다”며 이어 “일체형이라 제품 간 간격이 좁아 실수로 사용하지 않는 기구의 버튼도 누르게 된다”고 불편함을 언급했다.


유행은 쉴 틈 없이 변하고 새로운 자극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성공한 하나의 소재가 있으면 모두가 그 항목을 접목하려 한다. 순식간에 분 유행의 바람이 모두를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오프라인 시장은 각각의 특성을 살려 차별화된 결합을 통해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할 것이다. 각각의 상품 특성에 맞는 결합과 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서 그 지역 주민들의 활발한 참여를 넘어 전 세계인의 필수 여행지로도 선정되길 소망한다.

▲ 은행업무와 북카페가 결합된 모습이다. <사진제공=KEB하나은행>
▲ 서울시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재탄생된 고가도로다. <사진제공=서울로7017>
▲ '플랫폼 창동 61'은 컨테이너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제공=플랫폼 창동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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