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좋아하는 밴드가 있었다. 음색부터 멜로디까지 어쩜 이렇게 완벽할 수 있는지. 전 앨범을 반복해 듣는 건 기본이요 이른바 ‘최애곡’의 가사는 통째로 외웠고, 뮤직비디오를 보며 멤버들의 SNS를 보는 것이 당시 필자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던 중에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가만히 있을리가. 곧바로 티켓을 구입하고 굿즈를 사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XX밴드 성추행 의혹’ 이 터진 건 그렇게 필자가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던 콘서트 며칠 전이었다.

 소수자에 대한 노래를 하던 멤버들은 캡쳐화면 속에서 미성년자 팬을 성희롱하고 의혹에 발뺌했다. 권위있는 어워드 파티 공연이 취소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밴드는 사실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이미 티켓은 우후죽순으로 풀려 나가는 중이었다. 필자는 어쩔 줄을 몰랐다. 배신감이 드는 와중에도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을 놓지 못했다. 필자가 다시 이들처럼 필자의 취향인 곡을 쓰는 밴드를 만날 수 있을까? 필자는 이제껏 성추행범의 노래를 들으며 힘든 생활에 위안을 받았나? 
이제껏 이들이 준 감동과 위로는 무엇이었는가..?

결국 끝까지 범죄 혐의는 밝혀지지 않았고, 필자는 티켓을 취소했지만 밴드를 놓지 못하고 노래를 듣다 말다 하다 최근 들어서야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었다. 아끼던 아티스트에 대한 배신감과 ‘설마 아닐거야’ 하는 마음이 부딪히는 와중에도 가장 화가 나는 건 이제껏 필자가 받은 위로에 의미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성범죄자의 음악.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필자와 같은 여성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팬으로서 열렬히 좋아하다 여성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을 했을 경우 얼마나 큰 배신감이 드는가.. 솔직히 말해 필자는 이들의 음악을 끊은 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공허하다. 완전히 놓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피해자들이 용기 내어 폭로를 했음에도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문 하나 내놓고 계속 활동하는 공인은 이제 그만 볼 때가 되었다. 팬으로서의 자신을 선택해 뒤늦게 후회하는 일은 많지만 여성으로서 자신을 선택해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배수현(경제 19)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