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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의 ‘ㄴㄷ’

기사승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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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의 문화]

“애 보는 거 쉬는 거 맞아? 당신이나 어머님이나 우리 엄마나 어차피 한 집 건너 일이라고. 나만 전쟁이야.”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애 보는 거 쉬는 거 맞아?”
20여 개월의 아이를 가진 주부 김지영의 노동은 아이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온종일 이어진다. 전쟁처럼 출근도, 퇴근도 없다. 그런데도 가사노동은 여성으로서의 당위이자 행복으로 치부된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엄마 역을 맡았던 배우 이일화가 떠오른다. ‘엄마의 집안일’은 한 가정을 굴러가게 하지만 그만큼의 보수나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다.

노동이 아닌 그저 ‘집안일’, 심지어는 집에서 노는 것이라 여겨지는 일도 다반사다. 겨우 가사를 마치고 아이와 잠깐 산책하며 커피라도 마실라치면,

“집에서 놀면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 마시고, 상팔자다. 나도 시집이나 갈까 봐.” / “민폐다 민폐. 집에서 좀 내려 마시지. 맘충.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이러니 집에서도, 집 밖에서도 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이렇게 평가절하된다.


“내가 나가서 일한다고 남편만큼 벌지도 못하는데.”
물론 직장에서도 여성의 노동은 여의치 않다. 김지영은 유능한 직원이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 팀장에게 칭찬을 받을 정도로. 그렇지만 김 팀장이 이끄는 홍보팀 명단에 김지영을 포함한 여성의 이름은 없다. 이유는 회사에서 5년 이상의 장기팀을 원해서였다. 가임기 여성은 언젠가 결혼을 해 출산할 것이고, 그러면 직장생활을 그만둘 테니 장기팀에 여성은 있을 수 없다고 간주한 것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만큼이나, 사용한 지 오래된 셀로판테이프만큼이나 그 시작점을 찾기가 어렵다. 가임기 여성의 존재는 그 자체로 회사의 손실이다. 곧 그만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승진에서 배제되고, 더 낮은 연봉을 받는다. 이러한 유리천장은 출산한 여성의 복직을 가로막는다.

“시어머니 말씀이 맞지. 내가 나가서 일한다고 남편만큼 벌지도 못하는데. 내 월급으로 어린이집, 보모 돈 대기도 모자랄지 몰라.(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이처럼 임금 차별, 유리천장 등은 긴밀한 톱니바퀴처럼 이가 척척 맞아 여성 경력단절이라는 거대한 구조가 된다. 아주 체계적인 차별 시스템이 따로 없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은 직장생활을 이어가기조차 쉽지 않다. 그렇다면 김지영의 위 세대 여성, 지영의 엄마 미숙은 어떨까.

“왜 엄마는 하고 싶던 선생님 안 했어?” / “엄마는 일해서 오빠들 학교 보내야 했으니까. 그때 여자들은 다 그랬어.” / “꽃다운 나이에 오빠들 뒷바라지한다고 청계천에서 미싱 돌리고. 핼쑥한 얼굴로 월급 타오는 날에는 엄마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아니? 그리고 너 미싱에 손 그렇게 됐을 때 엄마 가슴이 얼마나….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여성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다 그랬’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미싱을 돌려서 받은 쥐꼬리 월급으로 악착같이 남자 형제들을 공부시켰지만 정작 본인은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살고 싶은 삶을 포기해야 했다.


820401 김지영
누군가에게는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가 과장된 거짓말이라 평가되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매우 잘 그려낸 영화라 평가된다. 한 영화에 양극단의 딱지가 붙는 것은 우리가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탓이다. 당신들은 경험해볼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세상, 이곳에서 우리 김지영 들은 살아가고 있다.

4월 1일에 태어난 김지영의 삶은 만우절 거짓말 그 자체다. ‘에이 오늘 만우절이잖아’ 하고 쉽게 웃어넘길 시답잖은 만우절 장난만큼 아주 전형적이고 뻔한 삶. 그것이 김지영의 삶이다. 만우절의 말이 그렇게 쉽게 효력을 잃고 지워지는 것처럼 김지영의 삶도 껍데기만 남은 채로 지워져 왔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지워져 왔다.

“지영아. 너 얌전히 있지 마. 나대. 막 나대.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지워질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고 당당히 소리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나대’지 않으면 연필 자국 하나 낼 수 없다. 온 힘을 다해 ‘노동’하고 ‘나대’야만 점 하나를 겨우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짙어질 것이다. HB연필 자국에서 4B연필 글자로, 볼펜 문장으로. 그렇게 점점 짙어져 결국 만년필 잉크로 써서 내린 이야기로 눌러앉을 것이다. 그제야 우린 지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은, 언젠가 꼭 올 것이다.


                                                                                                          미디어 18 임린

숙대신보 smnews@sm.ac.kr

<저작권자 © 숙대신보 모바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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