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계에서 여성의 영향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19 공연예술트렌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국내 공연 관객의 약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 안에서 대상화돼 소비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 문화 생산의 주체가 돼 새로운 여성문화의 판도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여성들이 있다. ‘여성문화의 판도를 바꾼다’는 목표 아래 모인 28명의 여성, 소셜아트크루 ‘ELDORADO(이하 엘도라도)’다.

엘도라도엔 고정된 틀을 뒤집어 놓자는 출발점에서 모인 영화인, 디자이너, 무용가, 작가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현업자들이 함께한다. 본지 기자단은 엘도라도의 강한별 대표, 박연수 기획팀원, 소리(활동명) 연출팀원, 임로운 안무 단장, 조조(활동명) 총연출자, 허휘수(정책대학원 프랑스문화매니지먼트학과 석사·20졸) 안무 단장과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문화의 ‘황금의 땅’을 찾아서
엘도라도는 공연계에서 여성의 입지가 부족하고, 여성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임 안무 단장은 “엘도라도는 무용을 전공한 친구랑 ‘여성들이 올라갈 무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출발했어요”라며 “처음엔 작게 시작했는데 다른 분들을 섭외하다 보니 규모가 커졌어요”라고 말했다. 팀 이름인 엘도라도는 스페인어로 ‘황금의 땅’을 뜻한다. 임 안무 단장은 “여성들이 즐길 수 있고 창작할 수 있는 문화의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요”라며 팀 이름의 의미를 설명했다.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엘도라도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소통 문화’다. 조조 총연출자는 “각 팀에 팀을 이끄는 팀장이 있긴 하지만 팀장과 팀원의 관계가 수직적이지는 않아요”라며 “‘모두가 동등하다’라는 생각으로 평소에도 수평적인 회의를 통해 의견을 맞춰나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장점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엘도라도는 단순한 공연기획팀이 아닌 소셜아트크루(Social Art Crew)다. 소셜아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를 기반으로 삼는 예술적 행위를 말한다. 허 안무 단장은 “엘도라도가 여성 아티스트들을 이어주는 교각으로 자리 잡길 바라요”라며 “실제로 다양한 분야의 현직자 여성이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엘도라도가 여성 아티스트의 ‘만남의 장’ 역할을 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관객과 만든 공연, 여성연대로 이어지다
‘SWOP(Seoul WOmen’s Playground, 이하 SWOP)’은 엘도라도가 진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다. 엘도라도는 SWOP 공연 이전, 유튜브(Youtube) 영상과 카드 뉴스 등을 통해 관객을 만났다. 강 대표는 “엘도라도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엘도라도가 생소할 거로 생각했어요”라며 “저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리기 위해 카드 뉴스 같은 매체를 통해 접근했죠”라고 말했다. 카드 뉴스는 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에이오에이(AOA)의 ‘너나해’ 무대,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Terminator: Dark Fate)> 등 많은 여성에게 지지를 받았던 여성 문화를 다뤘다. 여성들은 기존의 대중매체가 보여주던 성적 대상화된 모습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는 모습에 열광했다. 박 기획팀원은 “카드 뉴스 마지막에 항상 ‘크러시한 여성들을 SWOP이 응원한다’는 문구를 넣었어요”라며 “SWOP 홍보와 동시에 여성 아티스트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SWOP은 다양한 장르의 여성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복합 문화 공연으로, 공연계와 대중 매체가 원하는 한정적인 여성상을 타파하고,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판’을 만들어보자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엘도라도는 SWOP을 위해 지난해 11월 7일(목)부터 12월 7일(토)까지 30일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을 받았다. 펀딩은 목표 금액의 114%인 3443만4900원을 달성하며 마무리됐다 SWOP은 지난달 22일(토) 서울특별시 광진구에 위치한 예스24 라이브홀(YES24 LIVE HALL)에서 진행됐다.

SWOP은 관객뿐 아니라 참여 아티스트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 공연이다. 조조 총연출자는 “사전에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을 들은 뒤 연출에 반영했어요”라며 “기획자가 어떤 모습을 요구하기보다는 아티스트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은 무대를 구성하도록 한 것이 SWOP만의 특장점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말했다. SWOP엔 임 안무 단장과 허 안무 단장이 속해있는 ‘TEAM ELDORADO’를 비롯해 ‘최삼’ ‘슬릭(SLEEQ)’ ‘모란’ ‘안예은’ 등 여성 아티스트 다수가 참여했다.

다양한 여성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보여준 SWOP 공연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총 1,075석 규모의 공연장을 약 900명의 관객이 찾았다. 강 대표는 “어떻게 관객을 불러모을지 많이 고민했어요”라며 “코로나19로 인한 문제가 아니었다면 객석을 다 채웠을 거라고 자신해요”라고 말했다. 임 안무 단장은 “관객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웠고, 현장에서 눈물을 보인 관객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문화 속 여성의 파이를 되찾기 위해
남성중심의 문화가 변화하기 위해선 문화계에서 여성의 몫이 커져야 한다. 허 안무 단장은 “많은 단체와 재단에서 진행하는 지원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게 여성문화가 풍부해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어요”라며 “이런 사업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아져야 사업 지원도 늘어나고 여성들이 부담 없이 도전에 뛰어들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SWOP은 여성만으로 구성된 무대를 통해 여성문화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강 대표는 “공연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 사전에 참여 아티스트에게 개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어요”라며 “그때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개선할 점을 찾기엔 너무 이른 시기가 아닌가’ ‘이제까지 여성들이 하는 공연이 없지 않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강 대표는 “지금은 팀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엘도라도에서 여성 아티스트가 설 수 있는 SWOP 공연을 여는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엘도라도의 팀원들은 소비 주체인 여성으로서 너그럽게 여성의 도전에 연대해줄 것을 당부했다. 소리 연출팀원은 “검열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검열할 여성문화 자체가 부족해요”라며 “여성문화가 주류를 차지했을 때 검열해도 늦지 않으니, 지금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해요”라고 당부했다. 여성에 대한 지나친 검열은 여성 스스로가 도전을 망설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허 안무 단장은 “남성 중심적인 문화의 문제점은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여성 문화에 존재하는 문제점은 여성 전체의 문제로 치환되죠”라며 “엘도라도가 먼저 많은 여성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엘도라도가 주최한 SWOP은 많은 열광 속에서 새로운 여성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앞으로도 엘도라도가 여성문화의 판을 새롭게 그리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강 대표는 “지금은 SWOP 마무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요”라며 “앞으로 어떻게 이 활동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보려고 해요”라고 엘도라도 활동을 이어갈 뜻을 말했다. 본지 또한 여성연대로 남성중심문화에 도전하는 엘도라도를 응원한다.

▲ SWOP 공연에 앞서 엘도라도가 제작한 홍보물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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