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변했다. 취업과 학점경쟁으로 분주했던 대학에선 이제 여성 인권을 외치는 대자보를 찾아볼 수 있다. 권력형 성폭력, 불법 촬영, 성적 대상화 등 개인사로 치부되던 사건도 정치적인 사안으로 변했다. 그러나 갈길은 아직 멀다. 여전히 성별 권력 관계가 견고한 대학사회에서 여성혐오에 맞서고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해온 여성의 발자취를 돌아보자.


캠퍼스에 퍼지는 페미니즘 물결, 그 중심에 선 여대
페미니즘을 인식한 여대의 구성원은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여대 내부의 개인을 바꿔 나갔다. 이들에 의해 변화한 여대 문화엔 무엇이 있을까. 여대를 중심으로 시작한 페미니즘의 흐름을 살펴봤다.

소비와 불매로 연대를 표하다
‘여성영화 단체관람’은 일종의 소비장려운동으로 여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문화 중 하나다. 이는 여성 감독 혹은 배우의 영화를 소비함으로써 여성 영화인의 입지 확대를 도모하고 연대를 표하는 움직임이다. 지난 2018년 서울여대에서 학생이 개인적으로 진행한 <미쓰백> 대관을 시작으로 본교를 포함한 덕성·동덕·성신여대는 여성영화 단체관람을 진행했다. 지난해 <82년생 김지영> 단체관람을 총괄한 노혜민 동덕여대 제52대 총학생회 문화기획국장은 “여성영화 단체관람은 대학 단체 문화생활의 의미를 넘어 페미니즘에 대한 공식적 연대 표현으로서 의의를 지닌다”고 말했다.

여성혐오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본교와 덕성여대는 학생들의 지속적인 교체 요구로 학교 주최 행사의 경품이 S사 기프티콘(Gifticon)에서 타 업체로 변경한 바 있다. S사는 로고의 선정성 논란과 사내 성희롱 늑장 대처 등으로 ‘여성혐오 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본교 학우들과 덕성여대 학생들은 각 담당 부처에 이의를 제기했고, 본교는 경력단절 여성 채용에 앞장서는 여성친화 기업으로 알려진 H사 기프티콘으로 상품을 변경했다. 이 현상은 여대 내 여론이 여성혐오 기반 기업의 성장을 저지하고 여성친화 기업의 성장을 돕고자 한 사례다. 소비를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여성영화 단체관람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성적 대상화를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
학교 홍보대사의 단복 변경 또한 교내 여론을 통한 여대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지난 2018년도 하반기 치마에서 바지로 단복을 교체한 동덕여대 홍보대사 ‘동그라미’를 시작으로 덕성여대 홍보대사 ‘빛내미’, 본교  입학홍보대사 ‘폴라리스(Polaris)’도 의상 교체가 이뤄졌다. 본교와 동덕여대 모두 변경 계기로 ‘학생들의 의견 수렴’ ‘학교를 대표하는 이미지 제고’ ‘치마 착용 시 활동의 제약’을 꼽으며 교내 성적 대상화 탈피 여론의 영향을 언급했다. 대표적으로 덕성여대는 교내 여론이 직접 홍보대사의 복장을 변경한 사례다. 덕성여대 내부에선 홍보대사의 의상과 관련한 논의가 몇 해 전부터 이어졌고, 이에 덕성여대 여성주의 소모임 ‘82t(현 FinD)’이 직접 나서 단복 변경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1000명 가까이 되는 재학생의 서명을 받아 홍보대사 빛내미와 학교 측에 전달했고 이후 빛내미와의 협의를 통해 단복 변경을 끌어냈다.

세 대학의 홍보대사 단복 변경은 여대 구성원의 성적 대상화 탈피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대 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된 ‘탈코르셋 담론’은 학교 홍보대사의 단복 의논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변화로 귀결됐다. 폴라리스는 단복의 변경을 통해 “쪽 찐 머리, 단아한 치마가 떠오르는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진취적이고 당당한 숙명인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게 됐다”며 “이 같은 변화의 물결이 사회로 더욱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 2018년도 상반기, 변경 전 단복인 치마를 착용한 동덕여대 홍보대사 '동그라미'의 모습이다. <사진제공=동덕여대 홍보대사 '동그라미'>
▲ 2019년도 상반기, 변경된 바지 단복을 착용한 동덕여대 홍보대사 동그라미의 모습이다. <사진제공=동덕여대 홍보대사 '동그라미'>

여대의 성적 대상화 탈피를 위한 변화로 지난해 성신여대의 일부 학과 및 동아리에서 ‘일일호프’를 취소한 사례도 들 수 있다. 학내에서 일일호프가 선정적인 의상 및 합석 보장 등으로 홍보될 우려가 있으며, 이러한 홍보 방식은 여성이 성적 대상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도록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한 몇몇 학생 단체는 일일호프를 취소하거나 여성만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새롭게 기획했다.

여성혐오 발언에 침묵하지 않는다
여대언론연합이 지난달 27일(목)부터 지난 11일(수)까지 실시한 ‘페미니즘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876명 중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하는가’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여대 재학생은 80.5%(554명)인 반면 공학대 재학생은 36.3%(322명)였다. 이는 여대 재학생이 여성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며, 공학대보다 여대가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활발한 담론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임을 방증한다.

이러한 환경이 뒷받침된 여대 학생들은 교직원의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본교와 동덕여대가 있다. 지난해 11월 동덕여대 학생들은 경제학과 모 교수의 ‘하얀 와이셔츠 입은 오빠들 만나야지’ ‘오빠들 만나러 가려고 수업 빠져도 돼’ 등의 여성혐오 발언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에 해당 교수는 대자보를 통해 여성혐오 발언 사실을 반박하며 학생들에 ‘익명 뒤에 숨지 말고 신원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학생들은 자신의 소속 학과와 이름을 기재해 ‘우리가 N인이다’라는 연대 대자보 릴레이로 교수의 권위적인 태도에 맞서기도 했다. 본교에선 영어영문학부 강사가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에 ‘변태나 치한 취급을 원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기에 숙명여대 수업을 가면 바닥만 보고 걷는 편’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해 논란이 됐다. 이에 영어영문학부 학생회는 입장문을 요구했으며, 본교 여성주의 소모임 ‘페미파워프로젝트’는 해당 강사의 여성혐오 발언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게재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 뒤, 각 대학은 여성혐오 발언을 한 교강사들에게 어떤 처분을 내렸을까. 본교는 문제 발언을 한 강사의 지난해 2학기 강의를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동덕여대의 경우 문제 교수에 대한 징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동덕여대 학생들은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에 ‘#1125혐오표현해방’ 해시태그(Hashtag)를 지속적으로 게시하며 문제 교수의 시정을 요구했다.

이렇듯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여대 학생들의 높은 성인지 감수성을 체감하게 한다. ‘우리가 N인이다’를 주도한 동덕여대 레디컬 페미니즘 모임 ‘싹둑’은 “대자보를 통해 여성혐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학내 구성원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많은 인원이 여성혐오적 풍토에 반대한다는 것을 학교 측에 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바꾼 대학가, 평등에 다가서다
여대는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이후 활발한 페미니즘 담론의 장으로 기능한다. 여대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의 바람은 대학사회에 반향을 일으켜 묻혀 있던 학내 여성혐오를 가시화하고 있다. 학내 페미니즘의 확산을 저지하는 요인과 학내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해 알아봤다.

여대는 왜 ‘메갈대’가 됐을까
여대언론연합 설문조사 결과, 공학대보다 여대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대 재학생 70%(312명)가 본인이 페미니스트임을 표현하는 반면 공학대 재학생의 경우 58%(68명)만이 이를 표현한다. 공학대보다 여대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여대와 공학대 간의 상이한 페미니즘 인식에 기인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5점 만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 여대 응답자의 평균은 4.5점인 반면 공학대 응답자의 평균은 2.9점이다. 공학대의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주관식 응답에서도 나타났다. 공학대에 재학 중인 응답자의 주관식 응답에선 ‘제발 대가리 깨진 X들아’ ‘쓸데없는 일에 시간쓰지 말고 대학언론의 기능이나 똑바로 해라’ ‘정신 차리고 그만해라’ 등의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응답자 563명을 대상으로 페미니스트임을 표출하는지 물었다. 본인이 페미니스트임을 표출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공학대보다 여대에서 많았다.
▲ 여대 재학생 554명과 공학대 재학생 322명을 대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여대는 평균 4.4점, 공학대는 평균 2.9점으로, 일반적으로 여대 재학생이 공학대 재학생보다 페미니즘에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을 볼 수 있다.

여성혐오로 얼룩진 상아탑
학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학내 여성혐오 확산으로 이어진다. 김민지 서울시립대 여성주의 동아리 ‘UOS(University Of Seoul) Femi’ 대표는 “학내 커뮤니티에 동아리를 향한 조롱과 협박성 글 뿐만 아니라 회원 개인을 특정한 비방글이 올라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생이 SNS 게시물과 단체 대화방에서 성희롱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성평등공동위원회에서 게재한 대자보에 따르면, 단체 대화방에선 ‘(과방에 있는 여성 학생을 대상으로) 카메라 설치해놨었는데’ ‘(현직교사가 초등학생 5학년 여성 학생을 대상으로) 이쁜 애는 따로 불러서 조용히 보듬어주는 척하면서 챙겨먹어요’ 등의 성희롱 발언이 오고갔다. 얼룩(활동명)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졸업생 성평등공동위원회 위원은 “해당 사건은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성폭력이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여성혐오적 문화에서 비롯됐다”며 “학내에 성평등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사회 내 성폭력 고발의 증가는 학내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보여준다. 지난해 8월 교육부가 발표한 ‘성신여대 A교수 성 비위 관련 사안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A교수는 지난 2018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소속 학과 학부생 2명에게 성적인 언행과 신체 접촉을 하고, 한 피해자에게 욕설을 하거나 쿠션으로 얼굴을 내리치는 등의 폭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지표로 보는 이슈’ 제148호 ‘고등교육기관 폭력예방 교육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고등교육기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교수인 사례는 지난 2015년 48건에서 지난 2018년 85건으로 늘었다. 본교 이화영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학교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엔 불균형한 권력이 작동한다”며 “이러한 불균형적인 권력 관계에서 성별은 곧 폭력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페미니즘, 여대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학내 페미니즘 억압과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중앙대 61대 총학생회 ‘알파’는 ‘FOC(Feminism Organization in Chung-Ang University, 이하 FOC)’ 사업을 중단했다. 해당 사업이 성별갈등을 조장하고 여성권익 향상만을 강조한다는 이유에서였다. FOC 사업은 중앙대 총학생회 산하 성평등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으로 학내 성평등 및 반(反)성폭력 문화 확산을 목표로 한다. FOC 사업 중단을 규탄하기 위해 지난해 5월 30일(목) 개최된 ‘중앙대학교 페미니스트 총궐기’에 연대 참여한 김 대표는 “해당 사건을 묵인할 경우 페미니즘을 억압하는 학내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며 “학내 페미니즘 억압과 여성혐오를 규탄하기 위해 연대 참여했다”고 말했다.

남성중심적 문화와 의식의 변화를 위해선 폭력예방 교육 및 윤리강령 수립, 성희롱 고충처리 기구 운영의 내실화 등 대학 본부 차원의 책임이 요구된다. 고등교육기관 폭력예방 교육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고등교육기관 고위직의 폭력예방교육 참여율(75.1%)은 국가기관 고위직 폭력예방교육 참여율(90.7%)과 공직유관단체 고위직 폭력예방교육 참여율(95.1%)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학 본부는 대학 공동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 및 성폭력에 대한 윤리강령을 제정해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인력 배치 및 예산 확대를 통한 학내 성희롱 고충처리 기구 운영의 내실화 지원 방안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형식적인 기구 운영으로 피해자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 본부는 전문인력을 충분히 배치하고 자원을 투입해 기구 운영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과반수의 대학이 성희롱 고충 처리 기구를 학생처 등 학생관련 행정부서에 설치하고 있다”며 “총장 직속 부서와 같이 전체 구성원을 아우르는 부서에 해당 기구를 배치해 전체 구성원의 성희롱 및 성폭력 문제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혐민국’을 바꾸는 여대, 선순환 이끈다
학생들이 바꾼 여대는 사회를 그리고 나아가 개인을 변화시켰다. 여성들의 외침이 일궈낸 사회와 개인의 변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 성평등을 향한 발돋움
지난해 9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미투(#Me Too) 운동 이후 사회변화에 대한 의견 조사’에 따르면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의 성희롱·폭력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여성의 62%와 남성의 58.3%가 ‘과거 자신의 말과 행동이 성희롱·폭력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증가함에 따라 디지털 성범죄 관련 용어도 변화했다. 과거 불법 촬영 근절 문구로 ‘예방이 최선’을 사용해 논란이 일었으나 이후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춘 ‘찍지 않아야’로 바뀌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용어의 사용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불법 촬영물에 대한 경각심이 증가하면서 서울교통공사는 매달 자체 점검과 함께 경찰서와의 협력을 통해 불법 촬영 점검을 진행한다. 또한 지난해 불법 촬영 탐지기 277대를 구매해 전체 역사에 한 대씩 설치했다. 유강재 서울교통공사 미디어실 주임은 “불법 촬영 범죄 근절을 위해 구청이나 경찰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며 시민들이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성인지 감수성 향상에 따른 판례도 나오고 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 보장을 향한 사회의 목소리는 형법 제269조 ‘자기 낙태죄(이하 낙태죄)’ 폐지라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4월 11일(목)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판결했다.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정은 여성이 국가의 통제나 보호가 필요한 이등 시민이 아닌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연대 참여로 함께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통해 낙태죄 폐지의 주요 논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으로 전환시켰다. 박 활동가는 “수많은 여성과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법의 한계를 부순 페미니즘
성인지 감수성의 증가에 따라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 판례 및 입법·개정안이 나오고 있다. 형법 제297조와 제298조는 강간 및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해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법원은 폭행 및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반항을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강간 및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해왔다. 즉 피해자의 격렬한 반항 및 저항에도 가해자가 이를 제압하고 강제적 성관계를 맺어야 강간 및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성인지 감수성 증가에 따라 법원의 판시도 변화하는 추세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은 피해자의 적극적 저항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강간죄를 인정했다.

성범죄 관련 법의 입법 및 개정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18년 10월,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법정형이 5년 이하에서 7년 이하, 1천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상향됐다. 또한 지난 2018년 8월 정의당 이정미 의원 등 10인이 형법 개정안을 발의해 폭행·협박의 이용이 없더라도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는 일명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n번방’ 사건으로 발화된 디지털 성범죄 처벌의 필요성은 국회 청원으로 이어졌다.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청원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청원을 주최한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팀 ‘Project ReSet(이하 리셋)’은 “국회는 청원 내용의 극히 일부인 딥페이크 처벌 조항만을 신설하는 졸속 처리를 강행했다”며 “그럼에도 국회는 국민의 뜻을 반영한 법안을 만들어 낸 것처럼 발표했다”고 국회 대응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현재 법안에서 디지털 성범죄의 개념은 매우 협소하게 정의되고 있다. 리셋은 “디지털 성범죄는 촬영 및 영상 유포, 화상에 국한된 형태로만 발생하지 않는다”며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성적 착취의 증거물이 유통되며 성적인 모욕 및 명예훼손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제도의 정비와 더불어 관련 법안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때다.

새로운 저항의 흐름 ‘탈코르셋’
시민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사법의 변화를 이끌어 낸 페미니즘은 다시 개인에게 돌아와 선순환을 증명하고 있다. 짙은 화장, 긴 머리, 지나친 다이어트 등을 거부하고 외모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탈코르셋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적 코르셋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20대 여성은 여대사회를 중심으로 다시 부조리를 타파하는 주체가 됐다. 동덕여대 천은진(국사 18) 씨는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탈코르셋을 실천했다. 천 씨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일 때는 외출 준비에 긴 시간을 들였다”며 “이제는 화장은 물론이고 불편한 옷을 찾아 입지 않으니 약속에 늦는 일이 거의 없다”고 탈코르셋이 생활에 가져온 편리함을 전했다. 미용적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아 소비생활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의류 시장에도 탈코르셋의 흐름은 여실하다. 기존의 의류 업체는 판매 유도를 위해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양산했고 이는 결국 허술한 봉제와 저품질 원단 사용 등으로 이어져 옷의 질을 하락시켰다. 여남 공용 의류 브랜드 퓨즈서울 김수정 대표는 “이 모든 게 여성복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명백한 여성혐오이자 소비자 기만이다”며 여성복 시장의 부당함을 강조했다. 퓨즈서울은 남성들만 누리던 ‘의복 혜택’을 여성에게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업 철학으로 본래의 옷이 그랬어야 할 편안함과 질 좋음을 추구하고 있다.

아직까지 탈코르셋은 비주류에 가깝다. 천 씨는 “개인의 실천은 곧 집단의 실천이 된다”며 “여성의 삶 전반에 걸친 족쇄를 부수는 탈코르셋은 일종의 해방 선언과도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김 대표는 “지금은 ‘나만’ 비주류라고 느낄 수 있지만 결국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과감히 나아가야 한다”며 주저하지 말고 실천하기를 독려했다.


여대 학생들은 언젠간 변화될 사회를 그리며 오늘 그리고 내일도 ‘설치고, 나대며, 떠들 것’이다. 비상식이 당연한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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