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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맞선 레즈비언, 평등의 깃발을 세우다

기사승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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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동성애 수용도는 최하위권이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사회 2019’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동성애 수용도는 10점 만점에 2.8점이다. 이는  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네 번째로 낮은 점수이며, OECD 회원국 평균인 5.1점보다도 낮은 수치다.
동성애자 중에서도 여성인 레즈비언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남성중심적 시각에 의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등 중첩된 차별에 노출돼 있다. 핵가족을 중심으로 한 법령은 레즈비언의 삶의 방식을 보장하지 못한다. 레즈비언은 자신을 향한 다중적인 편견과 차별에 어떻게 맞서고 있을까.
 
 
‘여성’ 그리고 ‘동성애자’
레즈비언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된다. 다이애나 E. H. 러셀과 질 래드포드의 저서 「페미사이드(Femicide)」에 따르면 과거 유럽에는 레즈비언을 강제로 처벌하는 법률뿐 아니라, 성행위를 한 레즈비언을 처형하는 등의  ‘레즈비사이드(Lesbicide)’가 존재했다.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레즈비사이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페미사이드에 포함된다.
 
‘레즈비언 처벌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레즈비언을 향한 폭력인 레즈보포비아(Lesbophobia)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5년 3월 미국의 한 식료품점에서 애정표현을 하고 있던 레즈비언 커플에게 경찰이 협박을 가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영국에선 레즈비언 커플이 키스 요구에 응하지 않자 10대 남성 청소년이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명인이라고 해서 레즈보포비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스탠드업 코미디(Stand-up Comedy) 공연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에선 동성애 혐오가 만연한 지역에서 자란 해나 개즈비는 한 버스 정류장에서 ‘여성스럽지 않은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폭행당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은 여성과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다중적인 차별을 겪는다. 지난 201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발행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차별과 폭력을 직접 경험한 레즈비언은 43.1%에 달하지만, 이 중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4.9%에 그친다. 레즈비언 응답자 중 65.3%는 폭력을 신고하지 않는 이유로 '신고해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고 응답했다.

박보람 여성의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남성들에게 여성과 교제한다고 했을 때 ‘그래서 남자 역할은 누구냐’ ‘내가 이성애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 등의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 반응 때문에 개인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레즈비언 혐오폭력에 대한 대처는 성범죄 피해 시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경험자의 81.6%가 성희롱 피해에 대처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31.8%는 대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고 말했다. 

박김수진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대표는 “현재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레즈비언은 성폭력과 같은 레즈비언 혐오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레즈비언이 폭력을 신고하지 않는 이유가 여성인권의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의미이다. 박김 대표는 “동성애자이기 이전에 여성인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는 여성혐오 범죄와 닮아있다”며 “레즈비언 혐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선 여성 인권의 향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레즈비언 혐오는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레즈비언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이유로 성희롱 발언을 듣기도 한다. 이수지(영어영문 18) 학우는 “레즈비언이라는 성적 지향을 밝히자 남성은 ‘그럼 같이 (성관계)하게 여자 한 명만 구해와라’며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포르노 웹사이트 폰허브(Pornhub)에서 지난 2018년 12월 11일(수)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폰허브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레즈비언'이었다. 폰허브의 전체 이용자 중 약 71%가 남성임을 고려했을 때, 레즈비언의 관계가 남성에 의해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한 다중적인 폭력 중 ‘교정강간’은 레즈비언의 성적 지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해악이 크다. 교정강간은 레즈비언의 성적 지향 교정을 명목으로 자행되는 성폭력이다. 교정강간은 2000년대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레즈비언 대상 성범죄가 연이어 발생한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국제 NGO ActionAid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지난 2010년 9월에 발생한 ‘해군 성소수자 여군 성폭행 사건’은 교정강간 사례에 해당한다. 레즈비언이자 해군 중위였던 피해자에게 직속상관 2명은 상습적으로 강제추행과 강간을 일삼았다. 1심에선 직속상관 2명에게 각각 8년, 1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으나 2심에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러한 판결을 규탄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를 중심으로 ‘#군대_내_교정강간_무죄판결_규탄’ 해시태그(Hashtag) 운동이 활발하게 이어지기도 했다.

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범행 과정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피해자가) 남성과의 성행위 경험이 없어서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남자 맛을 보여주겠다’ 등의 폭력적인 발언을 일삼았는데도 2심 판결에선 이러한 상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해당 판결에서 피해자의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참작되지 않았다는 점과 ‘서로 호감이 있었고 교제하는 사이였다’는 가해자의 진술을 반영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유 활동가는 “해당 사건은 성소수자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기반으로 이뤄진 범죄로 동성애를 배제하는 이성애중심주의를 강화하는 해악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평등에서 멀어진 '기울어진 법'
현재 한국 사회엔 레즈비언의 생활 및 사회적 관계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미흡하다. 핵가족에게 법적 지위 및 권리 보장이 집중돼 주로 파트너와 동거하는 형태로 거주하거나 1인 가구인 레즈비언은 국가의 정책 및 복지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보람 위원장은 “국가는 국민을 ‘개인’이 아닌 ‘국가 유지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주거 및 복지 정책에서 인구 재생산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현저히 높은 레즈비언을 비롯한 성소수자는 법적으로 소외된다”고 말했다.
 
파트너와 동거하는 형태로 거주하는 레즈비언의 생활 방식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방안 중엔 동성혼 법제화 및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있다. 동성혼 법제화는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 2000년 12월 네덜란드는 최초로 동성혼과 동성 부부의 자녀 입양을 합법화했다.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동성혼을 법제화한 나라는 덴마크, 대만 등을 포함해 28개국에 이른다.

지난 2001년 독일은 '등록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독일의 가족법상의 생활공동체 관계엔 이성 간의 혼인관계와 동성 간의 생활동반자관계가 포함된다. 현재 한국에선 동성혼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생활동반자법 역시 제정되지 않고 있다. 박 위원장은 “혈연과 혼인 등 기존의 가족주의에 기반한 ‘보호자’ 개념을 확장해 레즈비언이 가족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인 가구로 거주하거나 여러 명과 공동 거주하는 레즈비언의 생활 방식에 대한 법적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김 대표는 “여성 1인 가구나 장애 여성 3인으로 구성된 가구 등 가족 구성 형태에 따른 차별없이 주거권, 경제권 등의 제도적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당에선 1인 여성 가구와 여성 가장을 위한 주택보조금, 생활보조금, 독립보조금 등의 실질적 복지 지원을 약속하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여성의당은 ‘혼인’이라는 제도를 전제하지 않고 가구라는 개념을 개별 시민으로 두고 있다”며 “이러한 여성의당의 공약은 기존의 가족주의 제도를 해체하고 개인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소외된 레즈비언,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다
성소수자 네트워크 내부에서도 레즈비언은 소외된다. 성소수자 잡지 「DIVA」와 마케팅리서치업체 ‘KANTAR’에서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을 맞아 지난달 20일(월)부터 26일(일)까지 약 1,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레즈비언 응답자의 79%가 ‘게이 등 남성 성소수자보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레즈비언의 정치적 소외는 레즈비언이 겪는 혐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부재로도 이어진다. 생과읽(활동명) 활동가는 “성소수자 네트워크 내에선 ‘부치파이트’ ‘가위충’ 등의 레즈비언 혐오 단어를 유머로 소비하고 있다”며 “성소수자 네트워크 내부에서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성소수자 네트워크 내 레즈비언에 대한 인권 의식이 낮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이어 “‘군부대 내 게이 색출사건’에서 많은 성소수자 단체가 분노했던 것과 달리 ‘해군 성소수자 여군 성폭행 사건’에 대해선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관련 인권단체와 기관을 통해 사건 관련 정보를 찾고자 했으나 직접 연대를 요청하는 글을 보내기 전까진 사건 관련 정보를 공시한 기구를 찾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네트워크가 남성중심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레즈비언 가시화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 2018년 생과읽 활동가는 국내에서 최초로 ‘Get The L out’ 운동을 시작했다. 생과읽 활동가는 “지난 2018년 ‘런던 프라이드(London Pride)’에서  ‘Get The L out in UK’이 진행한 운동을 알게 됐다”며 “비교적 여성 인권이 높다고 생각했던 서양에서도 레즈비언의 인권은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레즈비언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일수록 전 세계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한국의 상황을 해외에 알리고 ‘전 세계 레즈비언 인권 실태 조사’ 한글 번역본을 배포하는 등 국내 레즈비언 연구와 콘텐츠 개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즈비언만을 위한 단독 오프라인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레즈비언데이(Lezvisibleday)는 지난해 4월 26일(금)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을 맞아 ‘제1회 레즈비언 임파워링 파티 LEZ DAY:LESBIAN IS LESBIAN’를 개최했다. 행사총괄을 맡은 랑랑(활동명)은 “모 게이 커뮤니티에서 ‘피싸개’ ‘보갈’같은 여성혐오적 용어를 사용하는 등 성소수자 네트워크 내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자정이 없었다”며 “이러한 성소수자 네트워크에 문제를 제기하는 레즈비언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혐오적 성소수자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레즈비언만을 위한 축제의 장이 필요하다고 절감했다”고 말했다.

공연자로 행사에 참여한 이수지 학우는 “의미 있는 공간에서 공연을 할 수 있어 뿌듯했다”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레즈비언들과 함께 분노하며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해당 행사는 레즈비언의 인권을 오프라인에서 공식적으로 발화하는 시작점이 됐다. 행사기획에 참여한 새우(활동명)는 “이번 행사는 레즈비언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레즈비언 간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며 “실질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 지난해 4월 26일(금) 열린 ‘제1회 레즈비언 임파워링 파티 LEZ DAY:LESBIAN IS LESBIAN’에서 사회자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레즈비언들은 대학교 동아리를 중심으로 연대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9월 이화 여성주의 연합 래디(Rad-E)는 ‘Get The L Out in Korea 선언문’을 발표하는 ‘탈GBT, 탈퀴어 선언식’을 개최했다. 김다영 래디 부회장은 “해당 행사는 성소수자 네트워크 내에서 일어나는 여성혐오에 문제를 제기하고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간의 연대를 꾀하기 위해 개최했다”며 이를 진행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Get The L Out in Korea 선언문’에선 레즈비어니즘을 새로 정의한다.

여성 간 연애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것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영역에서 여성들과 연대하고 생활하는 것도 레즈비언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김 부회장은 “기존의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성적인 것으로만 여겨졌던 레즈비어니즘의 다른 의미를 알리고 싶었다”며 “이성애 규범에서 벗어나 여성연대를 실천하는 레즈비어니즘을 통해 가부장제에 가장 큰 균열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즈비언이 레즈비언으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으려면 개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단체, 사회의 법적 안전망 구축 등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레즈보포비아의 피해자였던 해나 개즈비는 ‘뼛속까지 으스러졌다가 다시 일어선 여성보다 강한 것은 없다는 걸 모두 아시잖아요’라며 ‘우리는 스스로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대면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과 동성애자라는 소수자성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지워지고 있는 레즈비언의 존재를 조명해야 할 때다. 
 
*동성애 수용도는 ‘동성애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우 아니다(1점)’부터 ‘매우 그렇다(10점)’까지 점수를 매긴 뒤 이를 환산한 수치임.

이하린 기자 smplhl97@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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