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밤낮으로 스마트폰을 쓰고도 그 원리를 모르는 게 부끄러워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공부엔 끝이 없어 보였다. 고민하던 차에 ‘블랙 박스(Black Box)’ 개념을 접했다.

기능을 알지만,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장치나 체계를 공학에선 블랙 박스라고 부른다. 스마트폰은 일종의 블랙 박스였다. 블랙 박스에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를 꼭꼭 숨기면 자책하지 않고도 스마트폰을 즐길 수 있었다.

복잡한 인간 세상도 박스로 덮고 외면하니 한결 속이 편했다. 빠른 배송 서비스가 그중 하나였다. 처음엔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빠른 배송이 가능하다는 게 미심쩍었다. 그런데 정말로 자기 전에 주문한 상품이 아침에 도착했다. 배송엔 문제가 없어서 의문은 엉성한 블랙 박스에 감췄다.

그런데 박스 틈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들려왔다. 지난 3월 빌라 계단에서 50대 계약직 배달원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사망 원인은 심정지였는데 노동조합은 코로나 19로 인한 업무량 증가를 지적했다. 지난주엔 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 19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다른 물류센터에선 40대 계약직 한 명이 또 세상을 떠났다. 지난 3개월간 같은 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새벽같이 도착하는 택배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더라면 상황이 좀 나았을까? 배송 인기 상품인 2L 생수 6개들이를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는 환경인지, 저렴한 배송료에 비해 배송이 너무 빠르진 않았는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밤낮으로 편의를 누리면서 열악한 배달 노동 현실에 눈과 귀를 막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스마트폰은 블랙 박스였지만 배송 서비스는 사실 속이 훤히 보이는 ‘화이트 박스(White Box)’였다. 빠르고 저렴한 배송 서비스를 지탱하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와 방역 수칙을 지키기 어려운 노동 환경을 못 본 체하고 싶어 핑계를 댔다.

요즘은 배송 서비스를 맘 편히 누릴 수가 없다. 그래도 1인분의 삶을 넘어 타인의 안녕을 생각하는 지금이 낫다. 전에는 필요 이상의 편리함으로 배가 불렀다면 이제는 동료 시민에 대한 관심으로 마음이 찼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엉성한 박스를 만들어간다. 당신이 만들어 낸 박스는 무슨 색이고, 무엇이 담겨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박스 안에 문제를 감추고 외면한다면 문제는 더 커져서 언젠가 밖으로 새어 나올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박스 안의 현실을 마주했을 때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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