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위는 사회에서 일종의 일탈로 여겨진다. 19세기 서양에서 발행된 각종 의학잡지에선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성은 남편을 위축시키고 불능으로 만든다’며 여성이 자신의 성욕을 통제하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여성의 성적 욕망 표현은 오랫동안 금기시돼왔다. 남성의 자위는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한국 여성 자위의 인식 수준을 기반으로 여성 자위에 관한 부정적 인식 개선 방안을 알아보자.


여성 자위, 금기의 도미노
한국 사회엔 여성 자위의 부정적 인식이 만연하다. 지난 2018년 성인용품 브랜드 텐가코리아(TENGA-Korea)가 전국 만19세부터 만59세의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위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는 ‘사회는 남성 자위를 수용하는 분위기다’고 응답한 반면, 응답자의 약 70%는 ‘사회는 여성 자위를 수용하지 않는 분위기다’고 응답했다. 오지연 성교육놀이개발소 유니콘(YOUNIICON) 대표는 “여학생의 양육자보다 남학생의 양육자가 자위 관련 교육을 더 많이 요청한다”며 “여학생의 양육자는 교육을 요청하더라도 구체적인 자위 방법 교육은 꺼리는 편이다”고 말했다. 이수지(영어영문 18) 학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여성 자위 지침을 담은 소책자를 구매했다가 엄마에게 들켜 크게 혼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성 자위의 부정적 인식은 여성이 자위에 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렵게 한다.

적절한 성교육의 부재는 여성 자위에 관한 부정적 인식의 원인 중 하나다. 지난 2015년 8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성교육 표준안의 시행 즉각 중단과 내용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제출했다. 해당 요청서에 따르면 교육부가 지난 2015년 발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엔 ‘20대 남성이 또래 여성보다 성적 욕구가 강하다’와 같은 성차별적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오 대표는 “대중은 종종 여성도 성적 호기심과 흥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며 “이러한 사회 인식은 여성이 자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말했다. 여성은 성적 욕구를 비난받는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성욕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성중심적 성교육은 여성의 신체와 자위에 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로 여성 질환을 진료하는 이은 여우한의원 원장은 “불감증이나 *성교통 환자 중 병원에 오는 여성 환자 대부분은 자위 경험이 없어 자신의 성감대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자신의 성기가 불결하고 부끄럽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자위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논문 「20대 여성의 자위 경험과 성적 주체성 형성」에 따르면 여성은 자위에 관한 정보를 거의 접하지 못하고 성장하면서 여성의 성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성인용품 브랜드 텐가코리아가 만18세부터 만54세의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인의 자위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자위를 꺼리는 이유’ 항목에서 ‘스스로 성기를 만지는 것이 불편하고 거부감이 듦’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차별의 담장을 넘어선
여성친화적 성인용품점
자위 시 성인용품 유무에 따른 만족도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응답에 유의미한 차이가 드러났다. 지난해 성인용품 브랜드 텐가코리아가 만18세부터 만54세의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인용품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성인용품으로 자위할 때에 성인용품 없이 자위할 때보다 더 큰 만족도를 느꼈다. 또한 여성의 성인용품 유무에 따른 만족도 차이는 남성의 만족도 차이보다 2배 이상 컸다. 이를 통해 성인용품을 이용한 자위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쾌락을 크게 느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존 성인용품 시장은 남성 위주 성인용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2014년 전 세계 통계 정보 사이트 스태티스틱 브레인(Statistic Brain)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용품 시장의 거래 규모는 150억 달러(한화 약 17조 4,3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여성용 성인용품 업계를 선도하는 스웨덴의 레로(Lelo) 사의 시장 점유율은 0.8%에 불과했다. 이는 성인용품 시장에서 여성 친화적인 성인용품을 다루는 업계가 비주류에 속함을 시사한다.

본지 기자단은 지난달 27일(수) 오후2시 한국 성인용품 업계 실태를 직접 알아보고자 청담역에 위치한 한 성인용품점과 여성친화적 성인용품점 플레져랩(Pleasure-Lab)을 차례로 방문했다.

청담역에 위치한 지하 1층 성인용품점은 주로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성인용품을 취급하고 있었다. 매장 입구의 좁은 계단에서부터 매장 내부까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성의 나체 사진들이 이어졌다. 본지 기자단은 매장에 들어서자 여성의 신체를 본뜬 리얼돌(Real-Doll)과 마주쳤다.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해 쾌락의 소모품으로 이용하는 자위 도구들도 매장 가득 진열돼 있었고, 어린 여성의 입과 하반신을 형상화한 자위 도구도 즐비했다. 이처럼 성인용품을 이용하는 남성들은 어린 여성의 신체까지도 성적 욕구의 해소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플레져랩은 청담역의 성인용품점과 매장 외부에서부터 차이를 보였다. 불투명한 유리로 이뤄진 플레져랩 매장 전면을 지나 실내로 들어가면 밝은 조명 아래 알록달록한 성인용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플레져랩의 내부엔 토끼와 립스틱과 같이 노골적이지 않은 모양의 자위 도구들이 진열돼 있었다. 또한 플레져랩에선 성관계 시 다양한 체위를 나타내는 카드 혹은 주사위 등의 놀이 위주 성인용품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곽유라 플레져랩 대표는 “플레져랩은 어느 성별도 대상화하지 않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제품들을 선보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곽 대표는 “플레져랩을 방문하시는 여성 고객들은 ‘타 성인용품점과 달리 성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동성 직원이 있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인용품점의 차이는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남성중심적 시각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남성의 자위 도구에 대해 “여성의 신체를 본뜬 남성 자위 도구는 남성이 여성을 정복과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이는 여성혐오적 현실을 재생산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자위 도구의 공급이 지속된다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적대상화는 점차 심각해질 것이다. 강정은(미디어 18) 학우는 “여성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드러내선 안 되지만 남성의 성적 욕구는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모순적 시선의 대상이 된다”며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여성친화적 성인용품점 ‘플레져랩(Pleasure-Lab)’의 내부 모습이다.


‘내 몸 바로 알기’
여성주의 성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성교육 교육기관이 등장했다. 지난 2017년 생애주기별 맞춤형 성교육 학교인 라라스쿨(Lala-School)이 문을 열었다. 라라스쿨은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만들어진 편견을 해소하는 성교육을 통해 누구나 주체적으로 성을 누릴 수 있는 변화된 사회를 이끌어가고자 한다. 노하연 라라스쿨 대표는 “차별적인 성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다양한 사회문제를 양산하게 된다”며 “남성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 문화를 변화시킬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12월 라라스쿨은 여성의 성기를 직접 그려보는 ‘내음소(내 음순을 소개합니다)’와 자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자밍아웃’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뤄진 ‘메리 클리토리스’를 진행했다. 노 대표는 “사회로부터 수동적 성문화를 습득해온 여성에게 성적 주체성을 되찾아주고자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라라스쿨은 ‘성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는 표어 아래 성평등한 콘텐츠 제작과 교육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연령별 맞춤 성교육 서비스도 출시됐다. 지난해 오 대표는 성교육 놀이 개발소인 유니콘을 창업했다. 유니콘은 발달 맞춤형 학습을 주제로 타인의 몸과 성을 포용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만들고 있다. 생물학적 성을 비롯해 사회적 성에 관한 교육까지 포괄한 성교육은 사회 구성원의 성인지 감수성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오 대표는 “성과 관련된 행위 전반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는 인식 아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생물학적 성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성인지 감수성의 측면에서 사회적 관계도 함께 다루는 ‘포괄적 성교육’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포괄적 성교육은 성기의 기능에 관한 해부학적인 설명을 비롯해 ‘나와는 다른 성’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관계를 배우는 교육을 말한다.

본교에서도 여성의 신체 인식 개선을 위한 행사가 진행됐다. 여성의 자위를 꺼리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선 여성의 성과 성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지난 2016년 5월 27일(금) 청파제에서 중앙여성학동아리 ‘SFA(Sookmyung Feminist Association, 이하 SFA)’는 ‘보지 좀 보지’라는 행사를 개최했다. 해당 행사에선 학우들이 직접 자신의 성기나 가슴을 그리고 이를 전시하는 활동이 이뤄졌다. 행사를 기획한 SFA 부원 백가을(영문 11) 학우는 “당시 많은 학우가 자신의 성기의 색과 모양이 음란물에 등장하는 여성의 것과 다르다는 사실로 고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여성의 성기는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이러한 고민을 한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백 학우는 “여자 대학은 여성만 모여있어 성과 관련된 대화에 개방된 분위기임에도 여성의 성기에 관한 대화를 꺼리는 분위기가 안타까워 해당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SFA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성기 모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The Body 수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 지난 2016년 5월 27일(금) 본교 청파제에서 중앙여성학동아리 ‘SFA(Sookmyung Feminist Association)’의 ‘보지 좀 보지’ 행사에서 학우들이 자신의 성기나 가슴을 직접 그린 그림이다. <사진제공=SFA>

여성 자위 인식 개선 활동은 유튜브(Youtube)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옆집한의사 으니언니’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은 원장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자위에 대한 편견을 다루는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유년기에 성적 고민을 했던 이 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이 원장은 “여성 청소년이 성적 고민을 나눌 자리가 많지 않다”며 “자위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제작된 ‘여성 자위의 모든 Q&A, 건강하게 잘하는 방법’ 영상은 지난 1일(월) 기준 101만 회를 돌파했다. 이 원장은 “학생들이 여성 성기의 모양과 역할, 건강한 자위 방법을 알맞게 배워야 한다”며 “올바른 성 관념에 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체 일부를 알아가는, 어쩌면 당연한 과정인 여성 자위에 사회는 ‘불건전하다’는 틀을 씌웠다. 여성 자위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꼈던 김예지 감독은 영화 <자밍아웃> 을 제작함으로써 세상을 향해 ‘나 자위한다’고 소리쳤다. 이러한 김 감독의 외침은 여성 억압이 성(性)이라는 가장 개인적인 영역까지 개입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여성 자위가 불건전한 일탈이 아닌, 여성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성교통: 성교 시 성기에 마찰감 및 통증이 있는 상태를 말함.
참고문헌: 전영미, 20대 여성의 자위 경험과 성적 주체성 형성, 석박사학위논문실, 2001, p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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