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화) 추분에 이르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밤보다 낮이 길던 여름이 끝나고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면서 긴 바지와 가디건 등을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길지도 두껍지도 않은 옷을 입고도 추위를 타지 않는다. 이는 섬유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기능성 소재 덕분일 수 있다. 면섬유, 모섬유 등 예전부터 쓰이던 천연섬유부터 최근에 등장해 널리 쓰이는 발열섬유까지, 방한복에 사용되는 섬유들의 역사와 특성을 알아보자.

천연섬유, 따뜻함을 지키다

식물성 천연 섬유 ‘면’
천연섬유는 원재료에 따라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의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겨울철 의복에 사용되는 식물성 천연섬유엔 면섬유가 있으며, 동물성 천연섬유로는 견섬유가 있다. 광물성 천연섬유로는 석면이 유일하다. 석면은 열에 강하고 강도가 높아 과거 단열재, 내열재 등의 건축자재나 소방복의 소재로 사용됐다. 그러나 석면이 암을 일으키고 폐를 굳게 하는 등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계보건기구는 석면을 알코올, 라돈 등과 같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한국에선 지난 2009년 석면 사용이 전면 축소됐다.

한국의 면섬유 사용은 고려 말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온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 1999년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능산리사지 유적에서 면직물이 출토됐다. 능산리사지는 삼국시대 때 백제가 한성(서울), 웅진(공진)을 거쳐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조성한 절이 있던 자리다. 심연옥 외 3인(2011)은 약 5mm 크기로 채취한 섬유 시료를 적외선 분석, 화학적 분석 그리고 형태적 분석 방법을 동원해 조사했다. 그 결과 해당 유물은 삼국시대에도 면직물이 사용됐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자료로 확인됐다. 이는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오기 전 한국에서도 면섬유를 제작 및 사용했다고 보는 관점에 설득력을 더한다.

면섬유는 목화솜에서 뽑아낸 식물성 천연섬유로, 식물에서 세포벽을 구성하는 셀룰로스(Cellulose)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박성우 한국섬유개발원 의류소재연구본부 본부장은 “셀룰로스의 분자 구조엔  물과 친해 섬유의 흡습성에 관여하는 물질인 수산기가 많다”고 말했다. 흡습성은 수분을 빨아들이는 성질로, 면과 같이 흡습성이 높은 섬유는 땀을 잘 흡수하며 정전기가 덜 일어난다.

오늘날 면섬유는 보온성을 높이기 위해 가공 과정을 거친다. 식물성 섬유인 면섬유엔 식물에서 물과 영양분이 이동하던 통로가 작은 구멍으로 남아있다. 면섬유는 중공이라 불리는 이 구멍에 공기를 품을 수 있어 보온성이 높다. 중공이 둥근 모양으로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공기를 많이 품을수록 면섬유의 보온 능력이 좋아진다. 그러나 자연 상태의 면섬유는 중공이 찌그러진 상태다. 이때 접혀있는 중공을 원형으로 만들기 위해 머서(Mercer) 가공을 거친다. 머서 가공은 면섬유를 수산화나트륨 용액에 담갔다가 물로 씻어내는 과정이다. 머서 가공을 거치면 셀룰로스가 팽창하면서 중공이 커져 면섬유의 보온성이 향상된다.

▲머서 가공 전후로 변화한 면섬유의 단면과 측면 그림이다. 머서 가공을 거치기 전의 면섬유가 단면도에서 접혀 있고 측면도에서 꼬여 있는 반면, 머서 가공을 거친 후의 면섬유는 단면도에선 원형이고 측면도에선 매끄럽다. 

가공을 통해 쉽게 형태 변형이 일어난다는 단점을 보완하기도 한다. 면섬유는 주름이 생기거나 길이가 줄어드는 등 형태가 바뀌기 쉽다. 면섬유는 짧은 섬유소끼리 꼬여 만들어진 단섬유여서 장섬유 보다 꼬임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박 본부장은 “단섬유는 꼬인 방향과 반대로 비틀면 실이 풀린다”며 “면섬유의 변형을 막기 위해 수지가공 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수지가공에선 천연섬유에 인조 화학 물질을 더하고 뜨거운 열을 가해 섬유를 고정한다. 수지가공된 면섬유는 세탁 후 건조를 거쳐도 안정된 형태를 유지한다.

동물로부터 얻은 '견'과 '모'
최초의 견직물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견직물은 누에고치로부터 실을 뽑아 만든다. 다시 말해 견직물을 얻기 위해선 누에에 뽕나무 잎을 먹여 기르는 오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때문에 당시 견직물은 가격이 높아 고위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중국의 문화가 세계로 퍼지면서 견직물도 여러 나라에 전해졌고 견직물은 중국의 주요 수출품이 됐다. 중국 문물이 서구로 수출되는 과정에서 상급 견직물 비단이 전달되기도 했다. 중국과 서구의 교역로를 비단길이라 불렀던 이유다. 

견섬유는 누에고치에서 얻은 천연 단백질 섬유다. 견섬유는 천연섬유 중 열전도율이 가장 낮아 보온성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열전도율은 일정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열에너지를 옮길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따라서 열전도율이 낮은 견섬유는 다른 섬유에 비해 체온을 공기 중으로 적게 전달한다. 체온을 비교적 적게 빼앗는다는 점에서 견섬유는 보온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견섬유가 보온성이 가장 뛰어난 섬유인 것은 아니다. 박 본부장은 “견섬유가 모든 면에서 보온성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며 “보온성은 열전도율뿐 아니라 공기 함유량, 직물 두께, 조직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모섬유는 동물 털에서 추출한 천연섬유다. 모섬유 중 가장 널리 쓰이는 양털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처음 사용됐다. 인류 문명의 최초 발원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선 고기, 우유 등을 얻기 위해 야생동물이던 양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후 양털이 상용화되고 품종 개량이 이뤄지면서 오늘날 전 세계의 양 품종은 약 8백여 종에 이르렀다. 1937년엔 양털 제품의 국제 규격을 정하는 국제양모사무국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설립되기도 했다. 양털은 현재도 의류, 이불 등에 사용되지만 아직 양털의 섬유 상태를 평가하는 통일된 기준은 없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종의 양을 어떻게 키우는지에 따라 양털의 상태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양털의 S자 구조 때문이다. 양털의 S자 형태는 다른 어떤 섬유에서도 찾을 수 없는 양모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 특징으로 인해 양모는 부드러운 감촉, 뛰어난 보온성을 가지고 있다.

천연섬유의 한계를 메꾼 인조섬유
인조섬유는 재생섬유, 합성섬유, 그리고 가공된 광물섬유가 있다. 인구가 증가하며 섬유 수요도 늘어나 인조섬유의 필요성이 커졌다. 천연섬유는 날씨에 따라 생산량, 품질이 좌우돼 꾸준히 확대되는 수요를 맞추기 어려웠다. 또한, 현대인의 활동적인 삶의 방식에 맞춰 보온성, 활동성, 디자인 모두를 충족하는 섬유가 필요했다. 레이온 섬유를 시작으로 발달한 인조섬유는 현재 나일론, 아크릴 등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일상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재생섬유는 기존의 천연섬유나 인조섬유를 재활용해 만들어진다. 재생섬유의 제조 과정은 재활용 폐기물을 가공하는 방법과 같다. 기존 섬유의 구성 성분을 다시 배열해 합성하면 재생 섬유가 된다. 레이온은 발열내의 재료로 자주 사용되는 재생섬유다. 레이온은 목재, 펄프 등을 강한 산성 용액에 녹여 섬유소를 흩어냈다가 이를 다시 압축해 만들어진다. 레이온의 원재료는 식물에서 얻어지는 목재, 펄프이기 때문에 레이온도 셀룰로스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레이온은 면섬유와 동일하게 흡습성이 좋다. 일반적으로 땀은 공기 중을 기화하면서 주변 열을 빼앗아 간다. 그러나 레이온처럼 흡습성이 좋으면 땀 분자가 기화하지 않고 섬유에 머물러 있게 된다. 우리가 레이온 섬유로 만든 옷을 입었을 때 따뜻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합성섬유는 탄소를 자연 상태엔 없던 분자 형태로 합성한 것이다. 합성섬유는 탄소를 많이 가진 물, 공기, 석탄, 석유 등을 원료로 한다. 또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합성 섬유에선 셀룰로스 같은 유기물이 사라진다. 섬유에서 유기물은 곰팡이, 해충의 먹이가 될 수 있다. 합성섬유는 이러한 유기물이 없어 천연섬유보다 해충, 곰팡이에 강하다. 합성섬유 중 하나인 아크릴은 둥근 형태의 단면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각진 단면의 레이온과  함께 사용하면 빈 공간이 생긴다. 이 공간은 면섬유의 중공과 같이 따뜻한 공기를 품고 있어 보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합성섬유는 물, 공기, 석유, 석탄 등의 원료에서 분자를 합성해 만든다.

인조 광물섬유는 유리, 돌 등 광물을 원료로 제조된 섬유다. 인조 광물섬유는 원료가 되는 광물을 기준으로 슬래그면, 유리면, 암면 등 또 한 번 구별된다. 유리를 녹여 섬유로 만든 유리면은 단열 효과가 뛰어나 건설 현장에서 방음재, 단열재로 사용된다. 그러나 여러 인조 광물섬유가 사람의 호흡기와 피부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건설 작업 시 인조 광물섬유 노출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리 몸을 데우는 발열원단
현대의 방한복엔 인공 섬유로 만든 발열원단이 사용된다. 발열원단은 그 자체로 열을 내는 효과가 있다. 발열원단으로 만든 방한복은 체온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몸을 더 따뜻하게 해준다. 이는 천연 섬유로 만든 방한복이 우리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만 하는 것과 다르다. 발열원단은 발열 원리에 따라 흡습발열, 광발열, 원적외선 방출, 체열반사 네 가지로 분류된다. 

흡습발열 원단은 대부분 레이온과 아크릴 소재로 이뤄진다. 흡습발열 원단은 땀을 흡수해 열을 낸다. 원단이 흡수하는 습기가 많을수록 열의 방출양도 많아진다. 흡습발열 원단에 흡습성이 좋은 레이온이 사용되는 이유다. 흡습발열 원단엔 보온성이 뛰어난 아크릴은 발생한 열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쓰인다. 따라서 레이온과 아크릴을 혼용한 방한복은 비가 오는 습한 날씨나 땀을 흘릴 정도로 많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격한 운동을 할 예정이라면 유의해야 한다. 운동으로 더워진 상태에서 흡습발열 원단의 옷을 입으면 열이 많이 방출돼 지나치게 덥다고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흡습발열로 홍보되는 제품들의 성분표다. 레이온과 아크릴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흡습발열 원단엔 응축열과 흡착열의 개념이 숨어있다. 땀이 증발해 옷에 닿으면 기체 상태였던 물 분자는 액체 상태가 된다. 모든 물질은 분자 상태에서 고체, 액체, 기체 순으로 활동성이 높고 에너지양도 증가한다. 기체 상태였던 분자가 액체 상태로 변하면 남는 에너지는 열에너지로 전환된다. 기체가 액체로 변하면서 방출하는 열을 응축열이라 한다. 또 땀이 옷에 닿으면 물 분자는 섬유에 달라붙는다. 이때도 열이 발생하는데, 기체나 액체가 고체 표면에 달라붙으면서 생기는 열을 흡착열이라 한다.

광발열 원단은 빛을 열로 전환하는 지르코늄(Zirconium) 원소를 포함한다. 지르코늄은 빛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꿔 저장할 뿐 아니라 보관할 수 있는 열의 양도 많다. 광발열 원단은 산화 또는 탄화시킨 지르코늄을 섬유에 혼합해 만든다. 광발열 원단으로 만들어진 방한복은 빛에너지를 받으면 섬유 속 지르코늄 분자들끼리 충돌하며 열을 발생시킨다. 광발열 원단은 빛을 받아야 발열 기능이 발휘되므로 내의보다는 외투에 주로 쓰이고 해가 떠 있는 낮에 활동하거나 불이 켜져 있는 실내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체열반사 원단과 원적외선 방출 원단은 모두 우리 몸의 특성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체열반사 원단은 몸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는 열을 다시 몸으로 반사해 체온을 높인다. 이를 위해 은, 알루미늄 등의 금속 물질이 사용된다. 원적외선 방출 원단은 빛이 같은 파장끼리 공명하는 성질을 이용한다. 공명 효과로 파장이 커져서 진동에너지가 늘어나는 때 일부는 열에너지로 바뀐다. 우리 몸은 언제나 10㎛ 정도의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원적외선 방출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우리 몸의 원적외선과 옷의 원적외선끼리 공명해 발열 효과가 나타난다. 원적외선 방출 원단엔 세라믹(Ceramic) 소재가 사용된다.

섬유 가공 기술의 발달로 섬유 산업은 더욱 발전했다. 소비자는 흡습발열 섬유, 광발열 섬유 등 다양한 기능성 섬유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모든 기능성 섬유가 모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KBS는 실험을 통해 단순 보온 기능은 면내의가 발열내의보다 더 뛰어나다고 보도했다. 반면 같은 실험에서 운동을 한 경우  발열내의를 입었을 때 면내의를 입었을 때보다 체온이 약 1.6℃ 높았다. 발열내의는 움직임이 적은 사람보다 신체활동을 주로 하는 사람에게 더욱 적합하다는 의미다. 자신의 평소 생활 습관에 맞춰 이에 맞는 발열내의를 선택한다면 굳이 두꺼운 옷을 껴입지 않더라도 더욱 따뜻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심연옥, 정용재, 유지아, & 남궁승. (2011).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백제 면직물연구. 문화재, 44(3),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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