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길거리에서도, 배달 음식 앱에서도 전 세계 각국의 음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요리계의 흐름 속에서도 37년 동안 한식에만 집중해온 셰프가 있다. 바로 한식 *파인 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 ‘한식공간’을 운영 중인 조희숙 셰프다. 그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Asia’s 50 Best Restaurants)에서 ‘2020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됐으며, 그가 운영하는 한식공간은 지난해 미슐랭(Michelin) 가이드의 미슐랭 1스타를 획득했다. 그의 한식은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입지를 굳히고 있다. 불판 앞의 열기가 식지 않는 그의 주방으로 들어가 보자.


셰프 조희숙의 발자취
조 셰프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요리계로 정착하게 됐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중학교 가정 과목 교사로 일하던 그는 지인의 권유로 1983년 서울 세종 호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요리계 입문은 쉽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호텔 주방에서 그는 손에 물이 마를 새도 없이 일해야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조 셰프 특유의 끈기와 책임감이 그를 셰프의 길로 이끌었다.

남성 성비가 높은 요리 업계에서 조 셰프는 주목할 만한 여성 셰프다. 조 셰프가 어린 나이에 주방의 책임자가 되자 선배인 남성 조리사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도 했다. 조 셰프는 “여성 셰프는 남성 셰프보다 체력이 약해 고된 주방일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라며 “주방에서 인정받기 위해 남성 셰프보다 두 배 이상 노력해야 했죠”라고 말했다. 기혼 여성은 직장에 소홀하다는 편견을 깨고, 남성 셰프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기 위해 그는 주방에선 오직 요리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현재 한 식당의 오너 셰프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그는 세종 호텔 이후로도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았다. 지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노보텔 앰버서더 강남에서 한식 과장으로 일했으며 1996년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유일한 여성 과장이었다. 그 후엔 신라호텔의 한식당에서 한식 조리장으로 근무했고, 2003년에 신라호텔이 한식당 영업을 종료하며 호텔 주방에서의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조 셰프는 미국에도 한식을 널리 알렸다. 그는 지난 2005년부터 일 년간 주미 한국 대사관저 총주방장을 역임하면서 대사관에 방문하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한식을 소개했다. 조 셰프는 “방문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국가의 식문화를 조사해 그들에게 친숙할 우리나라의 식자재와 조리법으로 요리했어요”라며 “그러면서도 한국의 식자재, 조리법을 사용하는 원칙을 고수했죠”라고 말했다.

요리 철학을 담은 한식
조 셰프는 자신의 요리를 ‘전통음식을 재해석한 조희숙 스타일의 한식’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한식의 색다른 조리 방법을 시도하면서도, 한식의 본래 맛을 존중하고 우리 고유의 식자재를 사용해 한식의 기본을 지킨다. 전통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나가는 그의 요리 철학을 알아보고자 한다.

조 셰프는 한식의 전통적인 조리 방법을 재해석한 ‘모던 한식’을 선보인다. 모던 한식은 전통 한식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현대의 감각에 맞게 변화시킨 한식이다. 그러나 조 셰프의 모던 한식은 특별하다. 서양의 식자재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모던 한식과는 달리, 그는 이미 존재하는 전통 조리 방법들을 조합해 ‘전통에 전통을 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조 셰프만의 모던 한식엔 한국 전통 음식인 떡에 고물을 넣듯, 여러 속 재료를 넣은 호박이 들어간 호박죽 등이 있다. 한식이라는 큰 틀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조 셰프는 “한식만으로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서 다른 나라의 요리를 연구할 시간이 없었어요”라고 한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했다.

조 셰프의 요리 철학은 요리의 기본을 중요시한다. 그의 요리 철학이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다. 수개월 전 한식공간에 방문한 대만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셰프가 그가 개발한 전복 어채를 먹고 감탄했다. 전복 어채는 전복을 얇게 썬 다음 녹말을 묻혀 채소와 데쳐내는 요리다. 그에게 전복 어채의 조리법을 배워간 셰프는 몇 달 후 조 셰프를 다시 찾아왔다.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조리했는데도 같은 맛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원인은 대만의 셰프가 감자 전분 대신 고구마와 옥수수 전분을 사용한 것이었다. 조 셰프는 “기본적인 재료 하나만 바뀌어도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계기였어요”라며 “단순한 요리일수록 재료 구성에 집중해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아야 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후임 교육을 통해 자신의 한식 철학을 전하고자 한다. 이러한 요리 철학은 특히 그의 후계 교육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조 셰프는 지난 2017년 후계 교육을 위해 ‘한식공방’이라는 한식 연구소를 차렸다. 조 셰프는 “조리법에 적힌 식자재의 계량에 지나치게 얽매이기보단 기본에 바탕을 둔 채 오감을 통해 요리하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조리 교육 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을 말했다.

조 셰프는 기업과 협업해 본인의 요리 철학이 담긴 조리법 개발에 주력하기도 했다. 풍부한 외식 산업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한식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컨설팅 사례로 대한항공의 기내식 컨설팅을 꼽았다. 그는 “비빔밥을 대체할 수 있는 한식 단품 요리를 찾다가 된장찌개를 간편화한 된장 덮밥을 개발하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된장 덮밥의 조리법엔 한식의 익숙한 풍미를 재현하면서도 새로운 모양으로 형상화하는 조 셰프의 요리 철학이 담겨있다. 이어 그는 “실제로 기내에서 상용화됐을 때가 인상적이었죠”라고 당시의 감상을 말했다.

‘한식공간’ 경영에 도전하다
조 셰프는 지난해부터 한식공간의 오너셰프로 활동하고 있다. 오너셰프란 경영인과 주방장을 겸하는 셰프다. 그는 원래 스스로 경영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한식공방을 통해 컨설팅을 진행했던 식당인 한식공간이 경영난으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다. 전통 한식을 기반으로 한 파인 다이닝의 실패 사례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조 셰프는 결국 한식공간을 인수하게 됐다. 조 셰프는 “한식공간 인수 전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어요”라며 “하지만 전통 한식의 입지와 전통 한식을 위해 한식공간에 온 셰프들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말했다.

한식공간 인수 후에도 조 셰프의 고민은 여전하다. 파인 다이닝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엔 한식공간의 건물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파인 다이닝 운영엔 고급화된 재료와 서비스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큰 비용이 든다. 파인 다이닝은 투자한 비용에 비해 이득이 적은 수익구조로,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선 레스토랑 수요가 커야 한다. 현재의 규모로는 이러한 파인 다이닝의 특성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조 셰프는 파인 다이닝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도록 식자재의 낭비를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조 셰프는 “요리에 사용되는 식자재의 원가를 줄이는 것이 아닌, 낭비되는 식자재를 줄임으로써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비용을 없애고자 해요”라며 “그러기 위해선 먼저 식자재를 대하는 조리실 구성원들의 태도부터 개선해 나가야죠”라고 말했다.

조 셰프는 한식공간에 새로운 서빙 방법을 도입하고자 한다. 지금의 코스 요리식 서빙 방법은 한식 고유의 맛을 유지한 한식공간의 요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다. 조 셰프는 “한식의 맛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한식공간만의 서빙 방법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그만의 포부를 말했다.

▲조희숙 셰프가 오너 셰프를 맡고 있는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한식공간'의 내부다.          

조 셰프는 주방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하게 지켜오고 있다. 그는 “저의 선천적인 재주를 살릴 수 있는 직업이 셰프임을 깨달았어요”라며 “처음엔 우연 같았지만, 사실은 필연이었던 ‘셰프’라는 직업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라고 말했다. 그는 결과에 집중하기보단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우리도 조 셰프와 같이 주어진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필연이 찾아올 것이다.

*파인 다이닝 : 훌륭한 정찬이라는 뜻으로, 고급 요리를 제공하는 격식 있는 식당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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