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세계 문자 가운데 그 제작자와 반포일, 제작 원리가 알려진 유일한 글자다. 그러나 우리의 자랑스러운 과거 유산에 외국어가 침범하고 있다. 외국어는 외국의 언어지만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래어와는 다르다. 최근 한국어 대신 외국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선 외국어가 쓰인 건물명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뉴스엔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오는 10월 9일(금)은 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지정된 한글날이다. 574돌 한글날을 기념하며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자.


한국어 사용, 안녕하십니까?”
최근 공공언어에선 외국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공언어는 사회 구성원이 읽는 것을 전제로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진행한 ‘2019년 중앙행정기관 공공언어 진단’에 따르면, 45개 중앙행정기관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어려운 어휘는 157개에 달했다. 이 중 불필요한 외국어 비중이 42.7%(67개)였다. 정부 업무 보고자료에서도 대체어가 있는 외국어가 그대로 사용됐다. 해당 자료에서 지적한 예시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글로벌 에이징 센터(Global Aging Center, 국제 노인 인권 센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SW 마에스트로(Software Maestro, 소프트웨어 인재)’, 중소벤처기업부의 ‘e-모빌리티(e-mobility, 차세대 교통수단)’ 등이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공공언어에서 차지하는 외국어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차에 탄 채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선별진료소를 뜻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선별진료소’와 비대면을 의미하는 ‘언택트(Untact)’에 온라인의 의미를 더한 개념 ‘온택트(Ontact)’등이다. 이는 각각 ‘순차 진료소’ ‘영상 대면’으로 순화할 수 있다. 이에 이대성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학예연구관은 “외국어는 여전히 우리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며 “새로운 문물이나 개념이 유입될 때 영어를 사용해 외국어 용어가 우리의 언어생활에 먼저 자리 잡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브랜드 마케팅에서도 잦은 외국어 사용이 나타난다. 일부 개인 카페나 양식당의 경우 영문명만 기재된 메뉴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성기지 한글학회 연구편찬실장은 “자영업자들이 고급스러운 가게 이미지 조성과 고객 유치에 우리글보다 외국어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다”고 분석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의 도시 표어 또한 대부분이 외국어로 이뤄졌다. 특히 대전·충남지역은 18개 광역·기초자치단체 중 15곳이 영문 도시 표어를 사용한다. 대전광역시는 지난해 시민공모 및 투표를 거쳐 ‘Daejeon is U’를 새로운 표어로 지정했다. 영문 표어 선정 이유를 묻자 대전광역시청 담당자는 “공모전 최종 후보 20개 중 한국어 표어는 1개뿐이었다”며 “한국어 표어는 후보 수와 투표수 모두 저조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는 대중의 영문 선호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학예연구관은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세련됐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한 무분별한 영문 사용을 제재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공공언어에서의 외국어 사용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공공언어는 공공기관의 정책 보도자료처럼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정보를 구성하는 언어다. 따라서 공공언어에 외국어가 포함될 시 고령층이나 빈곤층 등 외국어에 취약한 계층은 정보 전달에 불이익을 받는다. 실제 정부 보도자료에서 사용된 용어 ‘*브라운백 미팅(Brown Bag Meeting)’이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등은 그 뜻과 유래를 알지 못한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공공언어 인식 실태조사 연구’에선 연령이 높은 응답자일수록 현재 공공언어가 국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학예연구관은 “어려운 말은 소통을 막고 정보의 독점과 차별을 낳는다”며 “국민 소통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공공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한국어 사용을 권고했다.

외국어 남용에서 나타나는 영어 사대주의는 한국어의 쇠퇴를 불러올 수 있다. 사대주의는 주체성 없이 세력이 강한 대상을 섬기는 태도다. 습관적인 영어 사용은 영어가 한국어보다 우월한 언어라는 편견을 조장한다. 영어는 품격 있는 언어지만 한국어는 그렇지 않다는 사고관은 장기적으로 한국어 보존과 품격 유지에 걸림돌이 된다. 성 연구편찬실장은 “유럽의 일부 국가는 영어에 잠식되는 자국어를 지키기 위해 모국어 보호법까지 만들었다”며 “강대국 언어가 모국어를 지우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영어 사대주의 확산을 우려했다.


‘하드’한 공공언어 ‘쉽게’ 쓰려면
외국어 남용을 줄이기 위해선 언어 표현에서 ‘소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음’이다. 올바른 의미전달을 위해선 대중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 농촌진흥청 성제훈 대변인은 “특히 관공서는 행정행위를 국민에게 글이나 말로 전달해야 한다”며 “오해 없는 소통을 위해 관공서는 누구보다 정확한 의미전달을 고민하며 한글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다듬는 데 주력한다. 올해 국립국어원에서 새롭게 조직한 ‘새말모임’은 공공기관의 불필요한 외국어를 다듬는 단체다. 새말모임 회원은 국어, 정보통신, 법률,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새말모임은 공공기관이나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외국어의 대체어를 고안하고, 이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와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한다. 현재까지 새말모임에서 다듬은 말로는 ‘고령층 정보화(디지털 에이징, Digital Aging)’ ‘상생 소비(바이 소셜, Buy Social)’ ‘새 기준(뉴노멀, New Normal)’ ‘쓰레기 없애기(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 등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선 지난해부터 공공언어 개선을 목표로 공공언어통합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해당 시스템을 통해 각종 안내문과 보도자료 등에 사용할 적절한 용어와 올바른 표현법을 안내받을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공공언어 감수, 정책용어 상담, 공공언어 국민제보 등을 통해 총 1704건의 공공언어를 지원했다. 이 학예연구원은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언어는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 정책을 다루기 때문에 쉽고 편하게 읽혀야 한다”며 “우리말로 표현된 공공언어가 국민 소통을 이루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이외의 다양한 단체들도 공공언어 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명대 국어문화원은 충남도청 보도자료 평가, 충청남도 공공기관의 공공언어 진단, 충남 지역 문화재 안내문 쉽게 고치기 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상명대 국어문화원이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의 외국어 사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홈페이지’ ‘이메일’ ‘시티 투어(City Tour)’ 등의 외국어가 자주 사용된 사실을 파악했다. 이후 상명대 국어문화원 측은 이를 각각 ‘누리집’ ‘전자우편’ ‘도시 나들이’로 순화할 것을 제안했다. 김미형 상명대 한국언어문화전공 교수는 “우리 사회의 언어 환경을 개선하고 공공기관을 포함한 대중이 한글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늘연달 아흐레, 한국어 큰잔치에 초대합니다

상명대 국어문화원에선 574돌 한글날을 맞아 외국어 사용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행사를 열었다. 상명대 국어문화원에선 지난달 24일(월)부터 27일(일)까지 ‘좋은 가게 이름 공모전’을 개최했다. 해당 공모전은 어문 규범에 어긋나거나 외국어를 사용한 가게 간판의 사진을 찍은 후, 이해하기 쉬운 한국어로 새로운 가게명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에 김 교수는 “외국어를 남용하는 언어 환경을 시민들이 직접 살펴보며 국어 사랑 의식을 높이길 바란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전남대 국어문화원은 574돌 한글날 기념행사로 시민들이 한국어 사용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활동을 준비 중이다. 기념행사는 ‘제6회 광주시민 우리말 겨루기 한마당’과 ‘우리말 큰잔치’로 구성됐다. 오는 10월 9일(금) 열리는 우리말 겨루기 한마당은 광주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우리말 퀴즈 대회다. 지난 4일(금)부터 오는 10월 7일(수)까지 개최될 우리말 큰잔치 행사는 ‘우리말 말하기 대회’와 ‘국어문화 참여 행사’로 나뉜다. 우리말 말하기 대회는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 광주전남 사투리 말하기 대회, 한글날 기념 전시 행사 등으로 이뤄졌으며, 국어문화 참여 행사는 공공언어 개선 활동, 예쁜 이름을 사용한 착한 가게 찾기 등으로 구성됐다. 해당 행사는 우리글과 말을 바르게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으며, 한글과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발전시키는데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글학회는 한국어 연구와 연구 성과 보급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다. 한글학회는 1908년에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 단체로,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지인 「한글」을 90년 동안 발간해왔다. 「한글」엔 청소년 언어문화의 특성, 국어 문법 규정 등 한국어의 학문적 이론에 관한 연구가 실린다. 또한 한글학회는 매달 「한글 새소식」을 발행해 한글 관련 문헌을 소개하고 한글의 중요성을 알리는 등 한글 발전에 이바지한다.

한글학회에선 574돌 한글날을 맞이해 ‘국어 운동 공로 표창식’과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를 준비했다. 국어 운동 공로 표창식은 한 해 동안 한글 사용 장려에 힘쓴 사람에게 국어 운동 공로 표창패를 수여 하는 행사다. 또한 한글학회는 ‘국어 정보화의 이론과 실제’를 주제로 국어학자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제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선어학회(現 한글학회)에서 1932년 5월 1일 창간한 학술지 「한글」의 창간호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라는 의미다. 세종대왕은 백성이 쉽게 글을 익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다. 한글이 세상에 나온 지 574년이 된 지금, 우리 생활 속엔 외국어가 넘쳐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우리말로 표현할 때 가장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 성기지 한글학회 연구편찬실장은 “수십 년간 써왔던 단어 ‘신입생’ ‘써클(Circle)’도 꾸준한 순화 노력 끝에 ‘새내기’ ‘동아리’로 바뀌었다”고 우리말 순화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한글 창제에 깃든 세종대왕의 뜻을 떠올리며 한국어의 올바른 사용을 노력한다면 외국어의 홍수에서 우리말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연달 아흐레: 한글날인 10월 9일을 이르는 순우리말
* 직급 등의 제한 없이 진행되며 간단한 점심을 곁들이는 토론 모임으로, 점심으로 제공되는 샌드위치 등의 봉투가 갈색인 데서 유래함
** 단체 활동에서 조직원의 참여를 유도하고 업무 과정을 설계하는 등 단체의 효과적인 목적 달성을 돕는 사람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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