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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름 세 글자에 의문을 갖다

기사승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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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성(姓)∙본(本)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습니까?” 본 질문은 혼인신고서 4번 문항의 내용이다. 4번 문항에 대한 답으로 ‘아니요’를 선택하게 되면 별도의 절차 없이 혼인신고가 승인된다. 그러나 ‘예’를 선택할 경우엔 태어날 자녀가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기로 부부가 협의했음을 증명하는 별도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평등해야 할 부부가 부부로서의 시작을 약속하는 혼인신고 단계에서부터 차별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주제의 잔재, 부성 우선주의
호주제는 가족 구성원들의 신분 관계 변동을 남성 중심으로 기록하는 제도다. 호주제는 남성을 우선으로 호적상 대표자를 지정하는 점에서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제도로 볼 수 있다. 유교 문화를 계승한 한국에선 부계혈통주의가 전통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에 기반한 호주제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약 50년간 유지됐다. 남성중심적인 호주제는 한국의 가부장적 지배구조에 힘을 실었다.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姓)∙본(本)을 따르도록 하는 부성 강제주의는 호주제에서 파생된 제도다. 과거 부성 강제주의는 어떠한 예외도 허용하지 않고 반드시 아버지의 성∙본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호주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장기간 유지돼온 호주제는 지난 2005년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난 2008년 완전히 폐지됐다. 지난 2005년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문에 따르면 호주제는 현행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규정한 양성평등 조항에 어긋날 뿐 아니라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개인의 자율적 결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결정문엔 사회가 변화하면서 호주제의 문제점이 화두에 올라 그 필요가치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음이 명시돼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는 “8·90년대가 되면서 이혼 혹은 재혼이 급증해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졌다”며 “호주제는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인정하지 않은 가족 제도로 이혼, 재혼 가정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폐지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호주제가 없어진 지금도 한국에선 여전히 자녀가 아버지의 성∙본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여겨진다. 호주제가 폐지되자 이는 가족관계등록부 제도로 변경됐고, 호주제의 산물인 부성 강제주의는 부성 우선주의로 답습됐다. 민법 제781조 제1항에 따르면 자녀가 아버지의 성∙본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기로 협의할 수 있다. 협의가 이뤄진 경우 '자녀의 성과 본에 대한 협의서(이하 협의서)'를 혼인 신고서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협의서는 혼인신고 시에 제출해야 하며, 이후 자녀의 성본에 대해 부부간 새로운 협의가 이뤄지더라도 기존에 협의된 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 최지혜(IT공학 18) 학우는 “개정된 민법에도 근본적인 성차별적 요소가 부성 우선주의에 남아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녀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성 우선주의도 호주제와 다름없이 변화한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것이다.

   
▲ 혼인신고서 4번 문항에서 자녀의 성·본의 협의에 대해 묻고 있다. 협의가 있어 ‘예’라고 답할 경우 협의서를 첨부해야 한다.

 

   
▲ 자녀의 성·본을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기로 협의했을 경우 제출해야하는 협의서 양식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의 성∙본
부성 우선주의는 가정 형성에 대한 어머니의 생물학적 기여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부성 우선주의는 여성의 성∙본을 따르는 것을 이례적인 경우로 규정한다. 모든 자녀는 생물학적으로 부모 양쪽의 유전자를 모두 이어받는데도 불구하고 부성 우선주의는 여성의 관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양 교수는 “자녀를 잉태할 때 작용하는 여성과 남성 각각의 기여를 모두 존중해야 한다”며 “여성의 출산까지 고려하면 자녀에 대한 여성의 기여는 결코 무시당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최 학우는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주는 것은 여성들의 당연한 자유와 권리다”고 말했다.

여성의 성∙본이 자손에게 대물림되지 못하는 것은 가정에 대한 여성의 소속감을 약화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집안을 가리키는 말은 ‘친하다’는 의미의 ‘친(親)’자를 붙여 사용하고, 어머니 집안을 가리키는 말은 ‘바깥’을 뜻하는 ‘외(外)’자를 붙여 사용한다. 부모 집안을 지칭하는 단어의 차이는 자녀들이 상대적으로 부계에 더 많은 친밀감과 귀속감을 느끼는 것을 도와준다. 또한 부계는 자녀와 동성동본을 사용하기 때문에 모계보다 심리적인 결속력을 다지기 쉽다. 양 교수는 “외가의 입장에서 딸은 성∙본을 남기지 못하는 자손이기 때문에 아들과 비교하면서 차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성 우선주의라는 차별적 제도가 가족 구성원의 성평등한 복리를 증진하지 못 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최근 부성 우선주의가 지닌 성차별적 요소를 이유로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증가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지난 2013년 6873명을, 지난 2018년엔 3303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에 걸쳐 부성 우선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조사했다. 2018년의 조사 결과에선 지난 2013년 조사 결과인 61.9%보다 5.7%p 증가한 67.6%가 부성 우선주의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부성 우선주의 제도에 문제점을 인지하고 개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부성 우선주의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제도의 폐지 요구로 이어졌다. 지난 6월 30일(화)부터 지난 7월 30일(목)까지 진행됐던 국민청원 ‘자녀에게 엄마 성을 줄 수 있는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해주세요’는 약 2만8천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본 청원은 현재 민법에 규정된 부성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자녀의 성∙본을 결정할 때 완전히 부모 간 협의를 거치도록 개정해야 함을 강조했다. 권민경 변호사는 “평등한 혼인 관계를 위해 자녀의 성∙본 결정은 부부가  함께 협의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부성 우선주의 폐지 문제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성주의를 넘어선 평등한 이름을 위해
최근 부성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성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달 21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아 ‘최근 5년간 혼인신고 시 자녀가 모의 성∙본을 따르도록 협의하여 신청한 건수 현황’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을 통해 어머니의 성씨를 따르도록 협의 후 법원에 신청한 건수는 지난 2015년 243건, 지난해 379건으로 집계돼 5년 사이 56%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혼인신고 시 자녀가 모의 성·본을 따르도록 협의하여 신청한 건수 현황이다. 2020년은 6월까지 204건으로 나타났다. (자료 출처: 더불어민주당 이정미 의원 보도자료, 법원 행정처 제출자료(2020.8))


양성 쓰기, 성본 파괴 등 부성 우선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흐름도 등장했다. 양성 쓰기는 모성과 부성을 모두 표기하는 방식이다. 성본 파괴는 모성 역시 부성주의에서 비롯됐다고 간주해 성본의 파괴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민법은 자녀들은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고, 부모의 성∙본을 동시에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양성 쓰기로 이름을 표기하더라도 법적 효력을 갖지는 못한다.

부성 우선주의를 규정하는 법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지난달 14일(금)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발의안은 민법 제781조 제1항을 개정해 부모가 자녀의 성∙본을 부 또는 모의 성∙본으로 협의해 정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또한, 관련 법에서 자녀를 아들을 뜻하는 ‘자’에 한정해 표현한 것을 ‘자녀’를 바꾸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정 의원은 앞서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민의 목소리에 주목한 국가도 부성 우선주의를 개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기본계획 수정’에서 부성 우선주의 폐지 계획을 담았다. 제3차 기본계획 수정 세부 내용에서 포용적 가족문화 조성을 위한 불합리한 법제 정비 항목을 꼽았다. 그중 하나로 자녀 성 결정은 부성 우선주의에서 부모 협의 원칙으로 전환하고, 협의 시점은 혼인신고 시에서 출생 신고 시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권 변호사는 “부성주의가 폐지되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사회적 혼란이 따르겠지만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는 부성 외의 성을 사용할 경우 주변에서 가정사를 묻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현재 부성 외의 다른 성을 사용하는 것이 마치 비정상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우리에겐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인정 및 존중하는 새로운 성·본제도가 필요해 보인다.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반하는 제도인 호주제가 폐지됐듯이 현재의 가치관을 반영해 부성 우선주의 또한 폐지돼야 한다.

황수호∙서혜원 기자 smphsh99@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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