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비평 글을 통해 만났던 백자영 동문(작곡 06졸)은 ‘청중에게 낯선 현대음악의 방향을 알려주는’ 작곡가였다. 그의 곡은 현대음악 입문자에게 해석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한편 지난 9월 본지 편집실에서 만난 백 동문은 자신을 ‘현대음악 연구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현대음악을 활용할 때 다양한 음악적 도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지 기자단은 유학 시절 처음으로 백 동문이 작곡한 곡 ‘Trio’부터 지난 7월 발표된 ‘날아다니는 섬’까지 그가 만들어온 음률을 따라가 봤다.


상상 속 음표를 생생한 음악으로
백자영 동문(작곡 06졸)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오빠를 따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백 동문은 선생님으로부터 작곡 수업을 권유 받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듣는 귀’가 좋단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라며 “평소 새로운 걸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아 작곡 공부가 재밌었죠”라고 말했다. 작곡가를 꿈꾸던 백 동문은 이후 본교 작곡과에 진학했다. 백 동문은 ‘작곡 세미나’ 과목에서 동기들과 선보인 즉흥연주를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꼽았다. 그는 “몸이나 빈 상자를 악기처럼 활용해 만든 곡을 무대에서 발표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즉흥연주를 시작으로 백 동문은 현대음악에 관심을 가졌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곡을 쓸 수 있는 현대음악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유학을 떠난 백 동문은 통일과 소통의 가치를 탐구했다. 그는 장르, 악기 종류, 연주 방법 등의 음악적 요소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법을 연구했다. 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선생님의 영향으로 *미니멀 음악(Minimal Music)을 공부했어요”라며 “불필요한 음을 덜어내서 곡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배웠죠”라고 설명했다. 백 동문은 작곡 과정에서 소통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작곡가는 청중과 소통할 때 작곡 의도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암석', '다중 우주론' 등을 작곡한 페테르 외트뵈시(Peter eötvös) 씨를 만났다. 백 동문은 한 시간가량 그와 대화를 나누며 이에 대해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청중의 문화나 배경지식에 따라 곡을 이해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단 걸 알 수 있었어요”라며 “듣는 이를 미리 파악한 뒤 작곡에 임하자고 결심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첫 작품인 ‘Trio’는 지난 2007년 독일에서 작곡됐다. 백 동문은 현재 우리나라에선 사라진 전차에서 영감을 얻어 해당 곡을 작곡했다. 그는 “전기선만으로 움직이는 전차를 보고서 현악기가 떠올랐어요”라며 “선이 있는 악기만으로 곡을 끌어나가 보자고 생각했죠”라고 작곡 배경을 설명했다. 3분 길이의 곡인 ‘Trio’에서 연주자는 기타를 두드리고, 바이올린의 현을 뜯고, 피아노의 줄을 건드린다. 백 동문은 해당 곡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악기들의 특성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나만의 정체성으로 현대음악을 다시 쓰다
백 동문은 유학길에서의 배움을 작곡 활동에 녹여냈다. 지난 2018년 그가 작곡한 ‘(re);return’에선 통일성의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곡에선 플루트, 바이올린 등의 서양악기와 가야금 같은 국악기가 함께 등장한다. 그는 “당시 국악에 흥미가 생겨서 양악과 결합하는 시도를 했어요”라며 “어느 하나의 악기가 부담스럽거나 튀지 않도록 조율했죠”라고 회상했다. 같은 해 작업한 ‘기억의 조각’에서도 통일된 구조가 두드러진다. 기억의 조각은 파트리크 모디아노(Patrick Modiano)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착안해 작곡됐다. 소설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 말미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았단 사실을 알게 된다. 곡은 두 대의 바이올린이 E음(미)에서 시작해 전 음역을  연주하다가 처음으로 되돌아와 동일한 구조를 반복한다. 백 동문은 수미상관의 구조로 소설의 줄거리를 재치 있게 재해석한다. 

오늘날 백 동문은 음악으로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백 동문이 올해 발표한 ‘날아다니는 섬’은 대중에게 익숙한 책 「걸리버 여행기」를 소재로 한다. 곡은 거대한 섬이 꿈틀대는 모습을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의 악기가 미세한 음을 내는 것으로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섬은 결국 가볍게 하늘을 날아간다. 백 동문은 가볍고 높은 소리를 사용해 하늘을 나는 섬의 모습을 곡 속에 담았다. 올해 발표된 ‘소리 없는 움직임’에선 민요와 마임(Mime)이 활용된다. 민요 ‘새야새야’와 소리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연기하는 마임을 통해 관객은 곡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백 동문은 “가족들이 제 곡을 어려워하던 모습을 종종 봤어요”라며 “그들처럼 현대음악이 낯선 관객도 긴장을 놓고 감상하길 바라면서 곡을 썼어요”라고 작곡 의도를 설명했다. 

그가 꾸준히 이어온 활동은 지난 7월 열린 단독 작곡 발표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발표회에선 ‘움직임과 음악의 연결’을 주제로 ▶뭉쳐짐 version II  ▶기억의 조각 ▶더블레인보우 ▶소리 없는 움직임 ▶일체감 ▶날아다니는 섬 총 6곡이 연주됐다. 백 동문은 “발표회에서 그간 연주되지 못했던 곡들이 많이 공개됐어요”라며 “제가 썼던 곡이 처음으로 연주되는 걸 들으며 작곡가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됐죠”라고 덧붙였다.

백 동문은 현대음악을 ‘도전의 장르’로 정의한다. 그는 작곡가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비로소 현대음악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그는 “옛날에 발표된 음악이라도 작곡가의 실험이 담기면 모두가 현대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저도 어떤 악기로 어떤 음을 쓰는 게 좋을지 매번 고민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백 동문은 그 과정에서 좌절 또한 수반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새로 쓴 곡이 과거에 썼던 곡들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 낙담하기도 해요”라면서도 “하지만 그를 자양분 삼아 새로운 장르나 악기에 계속해서 도전하려고 하죠”라고 덧붙였다. 

▲ 백자영 동문(작곡 06졸)이 자신의 단독 작곡 발표회에서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 백자영 동문(작곡 06졸)이 자신의 단독 작곡 발표회에서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현대음악으로의 여정을 준비하는 당신께
백 동문은 직접 쓴 곡으로 더 많은 무대를 채워나가고자 한다. 풍성한 무대를 위해 그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백 동문은 “요즘엔 멕시코 전통악기를 활용한 곡을 작업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백 동문은 작업해보고 싶은 곡으로 오페라 장르를 선택했다. 그는 “오페라는 음악, 배우의 연기, 무대 미술이 어우러진 총체적인 예술이에요”라며 “제가 작곡한 곡이 배우와 조명을 만났을 때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돼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창작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여유를 가질 것을 당부한다. 목표를 향해 줄곧 달리기보단 주변을 둘러볼 때 창작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박물관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백 동문은 “영화나 음악처럼 나와 다르지만 유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 가까이 있어요”라며 “다른 분야라고 해도 그들과 교류한다면 다음 창작의 영감을 쉽게 얻을 수 있죠”라고 덧붙였다.

숙명인에겐 무엇이든지 끝까지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그 또한 낯섦을 이기는 끈기가 있었기에 현대음악 작곡가가 될 수 있었다. 백 동문은 “처음 현대음악을 들을 땐 저도 생소하다고 느꼈어요”라며 “하지만 곡을 전부 듣고 그 특색을 이해할 수 있었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먼저 노래를 멈추지 않고 들어보는 것을 권한다.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게 어려운 학우들에겐 익숙한 장르의 음악도 추천한다. 그는 “아이돌 음악이나 잘 알려진 클래식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라고 설명했다.

▲ 왼쪽의 QR코드부터 ‘(re);return’ ‘날아다니는 섬’ ‘소리 없는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다.


백자영 동문(작곡 06졸)은 자신의 작곡 활동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영상을 공개해 더 많은 사람들이 현대음악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백 동문은 “그 영상이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만나는 현대음악일 수 있어요”라며 “제가 작곡한 곡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당신도 가볍게 짐을 챙겨 현대음악이란 미지의 세계로 성큼 떠나보는 건 어떨까.

*미니멀 음악(Minimal Music): 소리의 변화를 최소한으로 억제한 음악 사조를 말함.


참고문헌
음악미학연구회, 「한국창작음악-비평과 해석사이 004」, 모노폴리, 2021, 10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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