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언제 응답이 돌아올지 모르는 곳에 꾸준히 신호를 보내는 일’에 매진한다. 이들은 알려지지 않은 우주를 끝 없이 궁금해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아이처럼 기뻐하기도 한다. 천문학자에게 우주 연구는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까. 심채경 박사와 함께 머나먼 우주를 탐구하는 천문학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천문학을 향한 열정의 서막

▲본지 기자단을 따뜻한 웃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심 박사의 모습이다.
▲본지 기자단을 따뜻한 웃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심 박사의 모습이다.

학창 시절 심채경 박사는 공부를 향한 열의로 가득 찬 학생이었다. 진지한 교육 환경을 원했던 그는 거주지와 다소 먼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했다. 심 박사는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어요”라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 머물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와 일기 쓰기를 즐겼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문과에 진학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심 박사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는 “인문학은 TV나 책, 강좌에서 접할 기회가 많아요”라며 “수학, 과학은 학교가 아니면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을거라고 생각했죠”라고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천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큰 고민 없이 경희대 우주과학과에 진학했지만 천문학의 매력이 심 박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 분야에서 오래 공부하는 학자가 되길 원했다. 심 박사는 “교과서를 읽을 때 특정 단원에 꽂히면 그 부분에만 매달렸어요”라며 “천문학이 아니었어도 학계에 남길 선택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호흡이 긴 천문학 연구는 그의 성향과 잘 맞았다. 심 박사는 “오래도록 앉아 연구하는 천문학계에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었죠”라고 얘기했다.

학부 시절 천문학을 향한 흥미가 가득했던 그는 자연스레 대학원 진학을 희망했다. 그는 일명 ‘학부 연구생’이라 불리며 일찍부터 대학원생 선배들과 어울렸다. 학부 1학년 땐 학교 건물 옥상에 간이 천문대를 만드는 선배들을 도왔다. 그는 “여름날 간이 천문대에 모여 인공위성을 관측한 일이 기억에 남아요”라며 “받침대를 고정하기 위해 시멘트를 바르고 거대한 망원경을 직접 설치하며 즐거움을 느꼈어요”라고 얘기했다. 학부생 신분이었지만 연구실 한편엔 그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연구실을 자주 가다 보니 지도 교수님께서 제 학년을 헷갈리시기도 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최초’ 단골 천문학자
대학원에 진학한 그의 첫 연구 분야는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타이탄’이었다. 심 박사는 미국과 유럽의 토성 탐사선인 ‘카시니(Cassini)’가 보내온 타이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는 빛 파장을 분석한 데이터로 타이탄 대기 성분이 ‘*알케인(Alkane)’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타이탄을 연구하며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치자 그는 어느새 국내 유일 ‘타이탄 전공자’가 됐다. 위성 연구는 다른 분야에 비해 관심도가 낮아 전공으로 선택하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타이탄 분석 이후 심 박사는 달 연구에 뛰어들었다. 대기를 가진 타이탄과 달리 달은 대기가 없어 연구 방법이 달랐다. 그는 “대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마친 상황에서 연구 대상을 바꾸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어요”라면서도 “달 연구를 통해 제 분야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단 생각으로 임했죠”라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심 박사는 세계 최초로 달의 ‘**우주풍화’ 원인을 밝혀냈다. 태양풍의 영향으로 달 표면 토양 성분이나 색상이 달라진단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는 해당 성과를 인정받아 ‘토양 탐정’이란 별명을 얻었다.

심 박사는 힘든 시간 또한 값진 경험이라 여기며 긴 대학원 과정을 묵묵히 견뎠다. 그는 수료 후 미래를 걱정하며 학위를 따는 과정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심 박사는 “힘든 시간을 이겨내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어요”라며 “해야 할 일에 몰두하며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죠”라고 말했다. 박사 과정 중엔 첫째 아이 출산으로 한 학기를 쉬어야 했다. 심 박사는 “잠시 쉬는 동안 학계에서 뒤처질까 조바심을 내기도 했어요”라면서도 “그렇지만 다행히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9년이란 긴 시간 끝에 그는 마침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심 박사가 개발에 참여한 ‘광시야 편광 카메라’ 모형이다.
▲심 박사가 개발에 참여한 ‘광시야 편광 카메라’ 모형이다.

2014년 박사과정 졸업 후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다누리호 개발에 참여했다. 다누리호는 우리나라 최초 달 궤도 탐사선이다. 심 박사가 소속된 한국천문연구원은 다누리호 탑재체 중 하나인 ‘광시야 편광 카메라’ 개발을 담당했다. 해당 카메라는 태양광이 달 표면에 부딪혀 반사된 편광을 촬영할 수 있다. 그는 “편광 카메라로 달 표면 토양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다누리호는 오랜 개발 기간을 거쳐 2022년 달 궤도에 안착했다. 심 박사는 “다누리가 현재 궤도에 잘 머물고 있어 다행이에요”라고 웃음 지었다. 심 박사는 앞으로 다누리가 보내올 자료를 분석할 계획이다. 


심 박사가 세상에 건네는 말
심 박사는 일을 선택할 때 ‘함께하는 사람들’과 ‘재미’를 가장 중시한다. 그는 우주를 사랑하는 천문학자들이 좋아 천문학을 선택했다. 그는 “천문학자와 제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이들의 동료가 되는 거였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인잡’에 출연해 천문학자의 남다른 시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 박사는 “저를 섭외하기 위해 방송 제작진분들이 한국천문연구원까지 오셨어요”라며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느꼈죠”라고 얘기했다. 그는 재밌는 일이라면 예상치 못한 제안에도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심 박사는 지난 2021년 에세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그는 “처음부터 출간을 계획하진 않았지만 출판사 제안으로 천문학자의 삶을 담은 에세이를 쓰게 됐어요”라며 “에세이가 큰 관심을 받아 과학 도서 수요가 상당하단 사실을 알게 됐죠”라고 말했다.

심 박사는 천문학자가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는 행성 탐사 경험이 없어 행성 과학자가 양성되기 어렵다. 심 박사는 “국내 천문학회에서 행성 과학자는 제 연구실 사람들밖에 없을 정도로 적었어요”라며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편하게 자문을 구하고 논의할 사람이 부족했죠”라며 어려움을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기초 과학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 박사는 “단기간에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기초 과학에 대한 지원이 이어져야 해요”라며 “성과보단 연구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인재 양성 제도를 확립해야죠”라고 강조했다.

심 박사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며 지식인에 가까워지길 바란다. 그는 ‘지식인의 사고방식’을 경험해볼 것을 추천했다. 그는 “한 번쯤은 관심 있는 과제나 공부를 진지하게 탐구해봤음 해요”라며 “대학에서 하나의 주제에 완전히 빠져들어 열중한 시간들이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죠”라고 얘기했다.


심채경 박사는 천문학자로서 해야 할 일인 ‘우주 연구’ 그 자체를 즐긴다. 반복되는 연구가 지치지 않냔 질문에 그는 우주엔 아직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 그만둘 수 없다고 답했다. 심 박사가 연구를 계속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우주를 향한 깊은 애정일 것이다. 자신 앞에 놓인 일에 즐거운 마음으로 몰두해보자. 어느새 더 높은 곳에 도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알케인(Alkane): 수소와 탄소로만 구성된 화합물의 단일 결합을 뜻함.
**우주 풍화: 천체 표면에 물리적, 화학적 변화가 발생하는 과정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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