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과거의 아픔을 역사로 기록하다

기사승인 2018.11.12  

공유
default_news_ad1
   
 

“있었던 일을 있었다고 말하면 되잖아, 있었던 일을 숨기기 때문에 나쁜 거야” 간토대진재 피해자 고인승 씨가 한 말이다. 간토대진재는 지난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때 일본에 의해 조선인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오늘날까지도 일본 당국은 간토대진재 때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간토대진재뿐만 아니라 일본은 일제강점기 당시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반성을 하거나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로 일제와 친일파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리지 않았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과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활동을 했던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 역사적 사실이다. 식민지 시기의 친일에 대한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아픈 역사이기에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고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의도로 설립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한국의 일제강점기 당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우리의 식민지 역사를 어떻게 나타내고 있을까.

5천 명의 이름으로 만든 식민지역사박물관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지난 8월 29일(수)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문을 열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본교와 대략 300m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식민지의 역사를 다룬 박물관은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Holocaust) 기념관’과 중국 난징의 ‘난징대학살 기념관’ 등 전 세계 곳곳에 있었지만 그동안 국내에선 볼 수 없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고 식민지 시대의 일본인과 친일파의 만행을 알리자는 의도로 설립됐다. 정태헌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는 “일본과 한국 극우 단체의 식민지미화론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왜곡된 역사의 실상을 알릴 필요성이 커졌다”며 “이러한 영향을 받아 2007년 역사관 건립 준비위원회가 발족되고 2015년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계획을 발표했다”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의 등장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이름 속 ‘식민지’라는 단어에서도 건립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설립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 실장은 “식민지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리더라도 우리가 식민지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고 그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방 실장은 “평범한 시민들과 지방자치단체, 동호회, 노동조합 등의 모금으로 박물관이 설립될 수 있었다”며 “매달 회비를 냈던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모금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들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시민의 힘으로 설립돼 자립적으로 운영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정 교수는 “사립박물관이 특정 개인이나 소수의 동호인에 의해 설립,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세계 박물관의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도 특수한 사례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제도적 청산을 넘어 기억과 기록을 통한 역사적 청산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역사운동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주도로 이뤄진 제도적 측면이 아니라 시민들의 주도로 박물관이 설립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개관에 대해 이은서(역사문화 17) 학우는 “박물관 개관에 여러 시민의 참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뭉클했다”며 “일제강점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만큼 식민지배 동안에 친일파, 독립운동가의 투쟁 및 해결되지 않은 여러 한일 간의 문제를 다룬 전문적인 박물관이 생겨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뜻깊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의 두 얼굴을 마주하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본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 항일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전시는 ▶1부: 일제는 왜 한반도를 침략했을까 ▶2부: 일제의 침략전쟁, 조선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3부: 한 시대 다른 삶 친일과 항일 ▶4부: 과거를 이겨내는 힘,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순서로 구성돼 있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일제강점기의 친일정책, 친일파,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박물관을 관람한 오다현(역사문화 17) 학우는 “3부 전시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운동가와 친일파가 앞뒤로 전시돼 있었다”며 “독립에 큰 영향을 미친 항일운동가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모습과 대비돼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엔 일제강점기의 유물들도 전시돼 있다. 지난달 24일(수) 김구 암살범을 처단할 때 사용된 ‘정의봉’이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 식민지배에 협력한 사람들의 친일 행위와 광복 전후의 행적을 수록한 사전인 ‘친일인명사전’ 또한 박물관의 대표적인 전시품이다. 이 학우는 “총 3권으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의 두께를 통해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사전에 있는 모든 친일파의 합당한 처벌과 일제 잔재의 청산이 모두 이뤄지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 중엔 외국인도 있다. 외국인의 관람을 위해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영어, 일본어 설명과 자막을 제공해 전시물의 내용이해를 돕고 있다. 박물관을 관람한 쿠시마 호타카(남?34) 씨는 “전시자료가 간략하게 정리돼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며 “일본에선 이런 내용에 대한 설명과 전시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인 기쿠치 스스무(남?51) 씨는 “일본이 조선에게 저질렀던 만행과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러한 역사가 반복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쿠치 씨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배상금으로 국가 간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유가족에게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 그 이상의 의미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용산구 내의 여러 역사기념관과 박물관에 대해 알리는 활동도 진행 중이다. 방 실장은 “식민지배 당시 삶과 정책을 알리는 역할뿐만 아니라 식민지역사박물관 주변의 독립과 민주의 가치가 담겨있는 곳들에 대한 안내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용산구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뿐만 아니라 효창공원, 남영동 대공분실, 백범김구기념관 등 여러 역사적 장소가 위치해 있다.
현대 사회에서 박물관은 전시와 교육을 넘어 참여와 관계 형성, 시민운동의 공간으로 기능을 넓혀가고 있다. 정 교수는 “박물관의 연 관람 인원은 1억 850만 명이 넘는다”며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수동적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박물관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세에 비춰 봤을 때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설립 과정부터 자료 수집, 전시 내용까지 시민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복합문화, 전시, 연구, 보존, 교육공간을 포함해 총 5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다. 박물관을 자료실과 강의를 진행할 수 있는 교육장,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원영 용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을 공동체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며 “앞으로 많은 시민과 함께 박물관 관람 및 공간을 이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비극적 역사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인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 성행함에 따라 식민지역사박물관도 다크투어리즘 여행객의 방문이 증가하고 있다. 방 실장은 “시민의식이 성장하며 역사적 과오를 회피하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크투어리즘을 통해 식민지역사박물관도 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닿길 바란다”며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사람들, 역사를 바라볼 줄 아는 민주시민을 만드는 것에 기여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방 실장은 바다에 빗대어 역사에서 소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닷물이 짠 이유는 3%의 나트륨 농도 때문이라고 한다. 바닷물의 나트륨 농도가 높으면 물고기가 못사는 사해가 되고 나트륨 농도가 낮았다면 인류는 바닷물로부터 소금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3?1운동에서 만세삼창을 외친 민중도 100명 중 3명이다. 3%의 민중들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꾼 것처럼 현재도 3%의 사람들이 앞으로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지난날의 과오와 노력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의 부끄러운 민낯을 가감 없이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강수연·한가람 기자 smpksy96@sm.ac.kr

<저작권자 © 숙대신보 모바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