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숙케치]

 

대학교 2학년을 마치자 쉼 없이 달려왔던 일상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무거운 것들을 버리고 맑은 바람과 기억으로 다시 채우기 위해 지난 2월, 바람의 섬으로 떠났다. 약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바닷가의 조그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을 하며 여행을 다녔다. 그 어느 때보다 푸른 공기가 필요한 시기에, 소중하게 담아온 제주의 기록 중 한 편이 학우들 마음에 위안이 되길 바란다.

밤의 바다를 오랫동안 걸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깊은 어둠 속에서 희끗희끗한 파도만이 바다와 검은 현무암의 경계를 나누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서면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어둠에 덜컥 겁이 났다. 먼 수평선을 바라보니 작은 불빛이 있었다. 고깃배였다. 한밤중에도 바다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란 생각에 조금 전까지의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며칠 사이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거셌다. 오랜만에 맑아진 날씨에 바다로 나가는 해녀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맨몸으로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만큼 날씨가 좋고 파도가 잔잔해야만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가까이 가서 물질 작업을 구경했다. 귤빛 *테왁들이 하나둘 바다로 나아갔다. ‘휘-후, 휘이-후’ 해녀의 숨비소리는 마치 바닷새의 울음소리 같았다. 소라와 전복을 바다의 품에서 주워 담는 해녀의 헤엄은 아름답고 치열했다. 부드럽게 오리발을 굴릴 때마다 해녀 할머니의 주위로 빛나는 물결을 볼 수 있었다.

‘바당이 제주의 쿰이여’ 바다가 제주의 품이란 말이다.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은 섬을 품은 바다를 자연스레 소중히 여긴다. 바다를 걷는 사람의 마음은 아름답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걷고 있다. 필자는 어떤 방식으로 바다를 걸어야 할까? 푸른 바람은 소망으로부터 오며 푸르름은 따뜻한 부름으로부터 온다. 우린 겨울에서 봄을 부르고 있고 곧 푸르른 여름이 올 것이라 믿는다.

*테왁: 해녀가 물질할 때, 가슴에 안고 부력을 이용해 헤엄을 치는 둥근 모양의 기구

회화과 18 배모니카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